동시대 미술로 새롭게 구현한 한국화
동시대 미술로 새롭게 구현한 한국화
  • 황인옥
  • 승인 2019.08.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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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호展, 갤러리 오모크
전통수묵 관념 갇히지 않고
‘드로잉’기법 현대미술과 소통
동양화 단골 소재 ‘소나무’ 作
권위 걷어내고 액자에 넣어
Liquid Drawing-_Styudy-칼라
신영호 작 ‘Liquid Drawing-Study on Tree’.

Liquid Drawing_Studyon-칼라
신영호 작 ‘Liquid Drawing-Study on Tree’

“‘수묵이 드로잉이냐?’라는 논란이 있기를 바라요.”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 신영호가 전시를 앞두고 “논란의 중심에 서도 좋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논란으로부터 비껴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논란의 당사자를 자처하다니…. 일순간 당혹감이 밀려왔지만 정작 그는 단호했다. “전통 수묵은 해체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 동시대와 괴리감 없이 소통하며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수묵을 드로잉이라고 한 표현은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고전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내 태도에 관한 것”이라고. 오랜 역사로 형성된 굳건한 관념과 권위의 수묵을 표현법의 일부인 드로잉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거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는 변이었다.

그가 논란의 단초로 제공한 것은 갤러리 오모크(omoke·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366)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목인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 작가는 수묵화를 서양회화의 스케치나 습작에 해당하는 드로잉으로, 먹을 리퀴드(액체)로 표현했다. 속내는 동양의 전통 방법론인 ‘수묵’을 동시대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목에서부터 건드리고 싶었던 것. 그는 2011년부터 이 제목으로 전시를 진행하며 수묵화를 이해하는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왔다. “수묵화를 드로잉이라는 표현법으로 접근하며 전통 수묵화에 덧입혀진 관념성과 권위적인 면모를 벗어내고 현대미술과의 소통력을 높이려 했어요.”

한국화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라면 ‘전통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질문에 봉착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전통한국화가 현대인과의 소통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작가라면 그로 인한 무력감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기 때문. ‘한국화의 전통과 현대 미술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해 한국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것인가’가 당면과제로 다가왔을 터. 그들에게 전통한국화의 동시대 미술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자의반 타의반 요구됐던 것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동양학과를 졸업 후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 ‘서예와 회화 비교연구’로 미술학 박사를 취득한 신영호에게 ‘한국화의 현대적 모색’이라는 화두는 누구보다 엄중하게 다가왔다. 한국화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이자 경북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과 교수로 재직하는 교육자라는 이중 포지션이 문제의식을 강화했다. “동양화의 근간을 이루는 서예라는 특성을 빼면 대상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동·서양화라고 다르지 않다고 봐요. 저는 한국화라고 규정해 차이를 두기보다 동서양을 초월하는 표현방식에 주목하고자 했어요.”

작가가 집중하는 예술적 철학은 이번 전시의 부제목에서 명확해진다. 부제목은 ‘Study on Tree(나무를 배우다)’. 작가가 “이 제목은 보다 중의적이고 포괄적”이라고 했다. “인류가 나무를 보아왔던 역사를 통해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 맥락을 관찰하는 동시에 결국 인류가 갖는 보편적 감성에 대해 사유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소재나 형식이 다소 복고적이지만 이를 통해 동시대의 문제와 연결하려는 진지하고 분석적이며 치열한 연구 자세가 부제목에 숨겨져 있다.

중심 소재는 전통수묵화의 소재인 소나무 등의 나무다. 재료는 전통과 현대가 동시에 사용된다. 전통 먹과 복사기에 사용되는 물에 탄 카본파우더를 동시에 사용한다. 나무 위나 주변에 염소나 새 등의 동물이 추가되기도 한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액자다. 고미술거리를 돌아다니며 고미술을 수집하고, 액자 속 그림은 빼고 대신 작가의 그림을 액자에 넣었다. 오래된 액자, 카본파우다 등은 수묵화에 덧입혀진 개념적인 요소와 권위를 걷어내는 기제로 활용됐다. 하지만 작가는 전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무나 염소, 새 등의 형상을 단순 형상 의미를 넘어 서예의 서체처럼 인식하고 표현한다. 동서양의 표현법을 동시에 수용하는 것. 이는 수묵이 현대예술영역 내에서 고립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새로운 형태의 서예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서예의 획을 차용하기 때문에 제 그림은 ‘그리다(畵)’와 ‘쓰다(書)’가 동시에 구사되죠. 동서양의 표현법을 동시에 수용하는 태도죠. 수묵화를 전통이냐 현대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저의 태도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죠.” 전시는 지난 7월 개관한 문화예술공간 오모크에서 10월 27일까지. 054-971-885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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