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진혁, 국경 의미가 약화된 현재, 민족 정체성을 고민하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진혁, 국경 의미가 약화된 현재, 민족 정체성을 고민하다
  • 서영옥
  • 승인 2019.08.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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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자로서 활약
임정 100주년 ‘디아스포라’전
재중동포화가와 역사 되새겨
학강미술관 관장으로서 활동
조선 중기~근현대作 2천여점
고서화·도자기·불상 등 소장
대한국인안중근2017
김진혁 작 ‘대한국인 안중근’

 

[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진혁

 

김진혁
김진혁 작가
“천지는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지만 그 기(氣)의 활동은 잠시도 쉬거나 정지하지 않는다.” (채근담). 부지런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학강(學岡) 선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학강(學岡)은 김진혁(61세)작가의 호(號)이다. 영남대학교 회화과를 졸업(77~84)하고 동(同)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84~86)한 김진혁은 한국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그에게는 화가 외에도 수식어 몇 가지가 더 붙는다. 학강이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소년기에 시작한 서예는 김진혁의 현재를 가늠하는 더 중요한 이력이다.

김진혁은 학강미술관(청우헌)의 관장이다. 학강미술관은 지난 2016년 10월 10일에 김진혁이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1920년대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거상 마쯔다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적산가옥이다. 김진혁이 1977년에 이사를 와 40년간 거주하다가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대구의 제2 간송미술관이 김진혁 관장이 꿈꾸는 학강미술관의 미래다.

학강미술관에는 고서화를 비롯해 수백여 점의 도자기와 불상, 민예품이 소장돼 있다. 조선 중기부터 근현대작품에 이르기까지 소장된 작품만 2천여 점이 넘는다. 소장품 대부분은 김진혁이 40년에 걸쳐 꾸준히 수집한 고미술품들이다. 서예를 배우면서 갖게 된 관심이 고서화 수집의 출발점이다. 대학교 졸업 후 교편을 잡으면서 본격적인 수집이 시작됐다.

조선중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비롯해 경상도 지역의 고서, 문인화, 서첩 등을 그가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한자에 대한 조예와 판독능력이 밑바탕이다. 호서지방 예학의 영수인 송시열, 조선후기 사자관 서체를 확립한 정곡 이수장, 추사 김정희의 작품에 이어 교남지역의 작품을 구분하여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진위 여부를 가름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올해 개관 4주년인 학강미술관은 석재 서병오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선보인 개관전(2016년)에 이어 극재 정점식 탄생 100주년기념 특별전(2017년) 등 비중 있는 전시들을 개최한 바 있다. 모두 김진혁이 기획하고 진행한 업적이다. 그 밖에도 김진혁은 석재기념사업회 부회장과 사무국장,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예사랑’의 회장이기도 하다. 28회의 개인전(1979년~ 2019년)이력을 더하면 그의 부지런한 삶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김진혁이 네 살 때였다.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사람과 자동차를 그리자 어머니가 대구시청 근처에 거주하던 이경희 화백에게 평을 청했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표현력”이라고 한 이화백의 평은 김진혁의 미술에 대한 소질을 방증한다. 국민학생(초등학생)이 되자 아버지는 붓을 선물했다. 방과 후 신문지에 그은 필획을 매일 아버지께 검사받다가 죽농 서동균과 소헌 김만호 문하에서 정식으로 서예를 배운 것은 1970년부터다. 바로 한학의 기초를 다지고 서예의 깊이를 체득해가는 시기에 해당된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휘호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미술특기자로 고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전국 서예대회에서 다수 입상한 경력은 김진혁에게 체화된 문묵의 맥을 가늠하게 한다.

최근에 작가 김진혁은 대구에서 이례적인 전시를 기획했다. ‘디아스포라를 넘어-김진혁, 취안우쑹’전이 그것이다. 2019년 13일부터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6~8전시실)에서 열린 이 전시는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대구예총이 주관하고 (주)메가젠 의료기업이 협력했다. 김진혁과 함께 참여한 작가 취안우쑹(권오송)은 재중동포 화가이다. 디아스포라 작가인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식민지 지배나 전쟁, 정치적 억압, 경제적 빈곤 등의 이유로 타국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을 지칭한다. 더 자세히는‘분산’이라는 뜻의 헬라(Greece)어로 그 시작은 유다왕국이 주전BC 586년에 바빌론(babylon)에 멸망하여 여러 나라에 흩어진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한국)말로는 민족분산(民族分散), 민족이산(民族離散)으로 번역되며 대체로 유대인처럼 모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적용된다. 모국이 버젓이 존재하는 한국의 이주자들에게도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상태, 현재 통일 조국이 부재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현대는 인구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국경의 의미가 약화되고 국가 정체성의 위기마저 거론된다. 보편화된 이주는 고향으로의 회귀보다 모국과 이주국 모두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으려는 새로운 현상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 정체성을 되묻는 새로운 디아스포라 담론으로 대두된다.”(서영옥, 디아스포라의 배에 부처, 2015년)

“한민족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과 만주, 연해주 등으로 떠나갔다. 식민지 지배와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 속에서 이산을 경험한 것이다. 그들은 이주국에서 아웃사이드(outside)에 머물며 고향의 의미를 상실하는 입장과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나누어진다. 동시대의 이주를 단일행태로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민족관계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주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주의 사유에는 개별적이거나 공통적인 측면이 존재하며 역사적인 조건에서는 대부분이 일정한 패턴을 그린다.”(서영옥, 디아스포라의 배에 부처, 2015년)

대체로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아픈 역사 속에서 예술로 자아와 민족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김진혁은 ‘디아스포라를 넘어’전을 기획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김진혁은 종종 중국을 오가며 민족정신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졌다. 이번 ‘디아스포라를 넘어’전에서 선보였던 작품도 이러한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길이 10m의 종이에 광개토대왕비의 역사적 고대사를 서예로 풀어낸 것이 그렇다. 디아스포라 작가인 취안우쑹은 흑룡강 대학의 교수였다. 현재는 중국 종신연금작가로 활동하며 현대수묵화가로 평가받는다. 취안우쑹은 현장 사생을 중시하는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그의 그림에서는 내면에 화석화된 풍경과 이국의 낯섦이 충돌하는 기운이 얼비친다.

이주한 땅에서 디아스포라는 이방인이자 마이너리티(minority)다. 존재하면서도 비 존재자처럼 타자로 머문다. 민족의 경계선 밖인 이들은 한마디로 민족의 범주에서 배제된 삶이었다. 하여 그들에게‘고향’은 특별한 의미로 자리한다. 있는 것만으로도 사뭇 설레는 곳. 고국에 정주하지 못한 불착민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그리움의 주소지가 바로 고향인 것이다. 역사적 고통인 조국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향수의 의미 이상이다. 시작이 반이다. 향후 더욱 확대될 ‘디아스포라를 넘어’전도 기대한다. 미술관의 관장과 전시기획자, 고미술품수집가, 각종 단체의 사무국장을 겸하는 작가 김진혁의 활약을 대구 미술계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김진혁의 작품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서영옥ㆍ미술학 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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