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시차
등의 시차
  • 승인 2019.08.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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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목욕탕 욕조에

낯선 할머니의 낡고 수줍은 여성이

울음소리 줄어든 후조처럼 앉아있다

그녀 등은 이별의 무게로 늙어간다

닿지 않아, 손끝으로부터 먼

담을 수 없어, 눈빛으로부터 먼

몸의 가장 쓸쓸한 장소로 남았다

나는 할머니의 검버섯을 씻어내고

할머니는 독거하는 적막에 내 비늘을 보태며

등에서 싹튼 쓸쓸한 물건을 서로 닦아낸다

“이렇게 고운 등도 늙겠제?”

돌아앉아 내민 내 등은

순식간 화상처럼 화끈거리는 시차에

등줄기까지 붉게 활짝 핀다

일면식 없던 사람들끼리

부끄럽고 쓸쓸한 등을 허락하는 풍경에서

알몸의 겨울들은 울컥 한다

◇모현숙= 2014 조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14),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조선문학문인회 회원, 詩공간 동인, 시집: <바람자루엔 바람이 없다>

<해설> 목욕탕은 등고선 다른 삶들이 함께한다. 일면식 없는 할머니의 쓸쓸한 장소(등)를 밀어주는 화자의 고운 심성이 반짝인다.
할머니의 독거 적막에 싹튼 가장 쓸쓸한 등을 씻어내며 서로의 물건을 닦아주는 전경이 아름답다.
고운 등도 언젠가는 늙겠제 하는 한마디에 화들짝 피는 정에 겨울도 울컥한다. 정한이 가슴을 후려친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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