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의 민원배심제
수성구의 민원배심제
  • 승인 2019.08.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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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자기 집 앞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일조권, 조망권, 공사 때의 소음, 진동, 분진, 지반균열 등은 건축주와 주민간의 다툼 요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언제나 당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대도로변에 고층의 병·의원 집합건물이 들어섰다. 늘 보던 범어성당 첨단 십자가를 볼 수 없어 마음이 허전했지만 환경변화에 금방 익숙해 졌다.

같이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병원건물을 못 짓게 하려고 현수막을 걸고 물리적 반대행동을 하면서 구청에 몰려가 항의를 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건축법에 따라 허가를 내 주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민선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단체장은 다양한 행정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있다. 시·군·구등 자치단체는 지역, 인구, 경제기반 등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행정을 도모하고 있다. 국내 어디를 가도 자치제 이전과 다른 변화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지방자치제의 긍정적 효과다. 주민행정에서 단체장이 골치 아파하는 것은 주민간의 이해관계로 갈등을 초래할 때다. 이럴 때 단체장의 행정지혜가 필요하고 그것은 단체장의 행정능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수성구청이 운영하는 민원배심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시에서의 주민갈등은 거의 대부분 건축행정에서 비롯된다. 건축주가 건축법의 절차에 따라 건축허가신청서를 제출하면 구청은 하자가 없으면 허가를 내 줘야 한다. 그러나 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단적·조직적·물리적 행동을 하면서 극구 반대하면 구청은 입장이 난처해진다. 법집행과 주민정서의 충돌을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행정청은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한다.

수성구가 어려운 주민행정을 풀기 위해 마련한 것이 민원배심회의제도다. 변호사, 건축사, 건축토목 관련교수, 자치행정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배심위원회는 객관적·합리적으로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짠다. 배심위원들은 공무원이 아니므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수성구의 발전적 시각에 초점을 두고 대안을 찾아 구청에 내 놓는다.

배심회의의 결정은 구속력은 없지만 전문가들이 고심하여 낸 결론이므로 구청장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법에 하자가 없는데 건축불허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주민들이 생활권·재산권을 침해당한다고 하는데 법만 강조할 수도 없다. 배심위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법규의 틀 안에서 주민과 건축주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다. 배심위원회는 10여명의 위원, 이해관련주민들이 참석하는 가운데서 열린다. 건축주와 주민대표의 의견을 듣고 질문도 하면서 전문가의 눈으로 문제의 핵심을 찾는다. 또 갈등문제가 있는 현장에 가서 확인도 병행한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수성구 민원배심회의에서 건축허가를 내 주도록 안을 낸 것은 199건으로 88.4%에 이른다. 혹자는 주민들이 반대해도 결국 허가를 내 주는데 배심회의가 뭐가 필요하냐고 항변한다. 배심위원들은 법과 현실의 틈에서 지혜를 짜 내야 한다. 법을 무시할 수 없어 결국은 허가로 가지만 주민 편에 서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쓴다. 설계도를 변경케 하는 경우도 있고 건물의 층수를 낮추기도 하고 건축할 때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도록 권유한다. 건축주에게 많은 양보를 강요하므로 배심회의는 건축주에게는 독소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원배심제도는 주민을 위한 시스템인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집단민원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 지방자치제의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다른 도시의 자치단체공무원이 수성구의 민원배심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민원배심제는 민원 갈등해소의 장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주민들은 법제도의 틀 안에서 주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민원배심제를 이해의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 민원배심제가 없다면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건축허가가 날 것이다. 수성구 외에 대구의 기초단체에는 민원배심제가 없다. 법에 하자가 없으면 무조건 건축허가를 내준다. 수성구에는 민원배심제가 있으므로 다듬어진 건축행정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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