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갈기려고 지팡이를 들다가 국수를 뒤집어엎다
한 대 갈기려고 지팡이를 들다가 국수를 뒤집어엎다
  • 승인 2019.08.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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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
십칠 개월 된 손자가 접시에 깎아놓은 과일을 혼자서 다 집어 먹었다. 그리고 빈 접시를 들고는 아장아장 걸어서 부엌의 싱크대 앞에 가서는 깨금발 들고는 그 위에 조심조심 얹는 모습의 동영상을 맏며느리가 보내왔다.

‘어쩌면 저렇게 일찍 식견이 들었을까?’ 다 먹은 빈 접시를 설거지하는 싱크대에 올려놓는 행동은 정말 귀여웠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가 빨라진 걸까?

저녁에 고부간 영상통화를 하면서 “어머님, 그건 준이가 과일을 더 달라고 하는 거에요.”하는 것이었다.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어린아이에겐 최고의 의사이며 최상의 심리학자는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부모가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필자의 교사시절 서예시간은 피하고 싶었다. 벼루를 엎지르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시커멓게 된 책상이며 교실 바닥을 닦아야 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실환경 심사에 지적받기 때문이었다.

홍만종의 순오지에 ‘열장복면(杖覆麵)’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한 대 갈기려고 지팡이를 들다가 국수를 뒤집어엎다.’라는 의미이다. ‘스님이 먹어 봐야 먹은 거지요.’라는 우리말의 속담을 한자로 번역해 놓은 말이다. 산에 사는 노스님이 손수 비탈길을 일구어 메밀을 심었다. 메밀씨앗을 뿌리면서 “올해는 메밀로 만든 국수를 실컷 먹겠구나!”하며 괭이질을 하였다. 옆에 있던 젊은 사미승이 “그야 스님이 먹어 봐야 먹은 거지요.”하며 맞장구치듯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느덧 수확의 계절이 되었다. 노스님은 “국수 뽑아 먹을 날이 다가오는 구나 배불리 먹겠다”라며 흥겨워하였다. 메밀 수확을 돕던 사미승이 땅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그야 스님이 먹어 봐야 먹은 거지요”하였다.

지독한 보릿고개가 되었다. 노스님은 메밀국수를 뽑아 쟁반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이렇게 국수를 뽑아 놓으니 어찌 배부르지 않으랴!”하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사미승이 바리를 들고 오다가 “그야 스님이 먹어 봐야 먹은 거지요”하며 콧방귀를 뀌듯 얼버무렸다. 노스님은 큰소리로 “국수 뽑아 놓고 한번 배불리 먹으려는데, 그래 한다는 소리가 또 그 소리냐? 그놈의 말본새가 어째 그 모양이냐”하고 사미승을 향해 냅다 소리를 쳤다.

노스님은 사미승을 한 대 갈기려고 지팡이를 들고 벌떡 일어나다 그만 국수를 뒤집어엎고 말았다. 사미승은 재빠르게 후닥닥 달아나면서 계속 입을 놀렸다. “그것 보세요! 제가 큰스님이 먹어 봐야 먹은 거라고 했잖아요!” 주위에 있던 다른 스님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깔깔! 낄낄!’ 박장대소했다. 노스님은 결국 국수를 못 먹었다. 세상일이란 이렇게 어렵다.

요즘 법무장관 후보자 일로 사회가 갈등을 겪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만 모으려고 ‘국론통일’교육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땐 교과서에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국민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만 모으려고 힘썼다. 민심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이덕무가 쓴 열상방언(冽上方言)에 ‘이불 간 보아 가며 발 편다.’는 속담이 있다. 이불은 짧은데 발을 뻗으면, 발은 반드시 바깥으로 나온다. 시작을 조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 재앙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든 제 힘을 헤아려서 해야 한다. 후보자는 장관이 되리라는 결과를 짐작하면서 미리 살피고 일을 시작한 듯하다. 후보자에 대한 몰랐던 사실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맹목적인 자식 사랑의 교육방법이 화를 더 키웠다. 스스로 얼굴에 환칠을 한 셈이다. 한 대 갈기려고 지팡이를 들다가 국수를 뒤집어엎었다.

아! 예로부터 성인들은 허투루 ‘반드시’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살다가 보면 ‘물 한 모금 마시는 것, 쌀 한 톨 쪼는 것도 다 운수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 만큼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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