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정답 모를 세상을 향한 부단한 날갯짓
'벌새', 정답 모를 세상을 향한 부단한 날갯짓
  • 배수경
  • 승인 2019.08.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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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 25관왕
질풍노도 14살 은희의 1994년
주변인과의 혼란스러운 관계 속
잔잔하게 그려지는 그녀의 성장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와 닮아
벌새-1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상처받고 또 때로는 위로를 받는다. 영화 ‘벌새’는 중학교 2학년 소녀 은희(박지후)가 어떻게 가족, 친구,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지,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성장을 해 나가는지를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세밀화처럼 자세하게 그려낸다. ‘벌새’는 국내 개봉 전부터 제 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제네레이션 14플러스), 제 45회 시애틀영화제 공식경쟁부문 대상, 제 18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 최우수국제장편영화상 등 내로라하는 국제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함으로써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 채 29일 개봉했다.

1994년, 대치동 방앗간집 딸 김은희는 중학교 2학년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늘 지쳐있는 어머니, 그리고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오빠는 은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에 살고 있지만 언니는 강북으로 학교를 다닌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은희는 집에서는 마치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내지만 집 밖에서는 날라리로 낙인 찍히기도 하고 가끔씩의 일탈도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은희는 남자친구, 절친, 그리고 자신에게 애정을 고백하는 후배까지 결이 다른 사랑 속에서도 혼란을 겪는다.
 

벌새
 

그때 한문선생님 영지(김새벽)가 은희의 삶에 등장한다. 집안 사람 누구도 오빠의 폭력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지만 영지는 은희에게 가해진 부당한 일에 함께 분노하고 참지말라는 조언을 한다. 폭력에 분노하는 영지의 태도는 명문대학에 다니지만 지금은 휴학중인 그녀의 삶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건 그정도다.

138분에 이르는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은희의 일상을 보여준다. 정적이고 느리게 진행되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 우정, 외로움, 분노 등 열네살의 은희가 겪는 모든 감정들을 그냥 관객 앞에 펼쳐놓을 뿐이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마치 내 이야기인 듯, 혹은 내 친구 이야기인 듯 순간 순간 마음 속을 파고든다.

은희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10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도 살짝 떠오른다. 영화 ‘벌새’는 ‘82년생 김지영’이 아닌 ‘80년생 김은희’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은희 역의 박지후는 물론이고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벌새2
 

영화는 관객을 삐삐, 음성사서함, 그리고 ‘칵테일사랑’, ‘사랑은 유리 같은 것’ 같은 그 시대의 유행가를 통해 1994년으로 소환한다. 김일성 사망은 물론 성수대교 붕괴도 1994년의 일이다. 은희의 귀 밑에 자라난 혹,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터전을 잃고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갑자기 끊어져버린 다리 등 개인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표출되는 은희와 영지, 그리고 아버지, 오빠의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준다.

작은 몸짓으로 꿀벌보다 더 부지런히 날개짓을 하는 벌새, 수많은 상실 속에서 중학교 2학년 은희가 무너지지 않고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 역시 벌새 못지 않은 부단한 날개짓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벌새3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날 알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는 영지의 마지막 편지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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