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리얼리티가 위험해지는 순간…봉오동전투
[백정우의 줌인아웃] 리얼리티가 위험해지는 순간…봉오동전투
  • 백정우
  • 승인 2019.08.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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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
 

1961년 6월 ‘카이에 뒤 시네마’120호에 평론가 자크 리베트 글이 실렸다. 내용은 이렇다. 「‘카포’에서 리바가 스스로 전기철조망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을 보자. 바로 이 순간, 마지막 프레임의 앵글에 정확하게 (중략) 시체를 잡기 위해 앙각으로 트레블링-인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 바로 이 사람은 가장 깊은 경멸만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아우슈비츠라는 미증유의 현장에서 자살을 감행한 여인의 손을 잡기 위해 감독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것이 리베트의 주장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시 16살의 소년 세르주 다네(훗날 그는 ‘카이에 뒤 시네마’편집장이 된다.)는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전적으로 옳다는 걸 안다. 고 술회한다. 리베트가 제기하는 바, 인간의 죽음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미학이 아닌 윤리적 고민이 담겨야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리얼리즘의 문제가 부상한다. 리얼리즘에 집착하여 리얼리티를 추구한들 리얼(real)에 근접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건을 혹은 그 속의 생생한 이미지를 재건하려는 시도나, 스펙터클을 만들려는 접근은 모두 관음증과 포르노그래피가 되어버린다. 생생함을 전시하기 위해 선택한 리얼리티의 과잉이 길어 올리는 폭력의 포르노그래피. 영화에서 리얼리티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바로 이때다.

‘봉오동 전투’에서 나는 리얼리티가 위험해지는 순간을 보았다. 영화 후반 박희순이 맡은 독립군 포로는 월강추격대 일본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모진 고문에 심신이 망가졌고 천거적대기에 감겨 장거리를 끌려온 그의 육신은 이미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이다. 이때 일본군 장검이(위에서 아래로 비정하게 수직 하강의 궤적을 긋는다.) 그의 심장을 향해 내리꽂힌다. 격분과 울분과 통한의 순간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전시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원신연 감독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봉오동 전투’는 ‘당위가 명확한 응징’이라면서 세심한 고증에 근거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영화 속 잔인함은 이제는 우리가 견뎌야 할, 그래서 이겨야 할 잔인성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감독이 말한 당위가 명확한 응징 즉 박희순의 죽음은 유해진이 일본군의 고환을 손으로 뜯어내어 버리는 장면과 만난다. 그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감독은 스크린에 재현할 때 관객이 견딜 만한 것으로 약화시켜야한다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시대를 이야기할 때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작가들은 윤리문제, 즉 상업미디어로 전송되는 대중적 유통과정에서 야기될 통속성과 선정성을 경계해야 한다. 재현 방식보다 그 어떤 미장센보다 우선 고려해야할 덕목이다.

아베가 경제전쟁을 선포한 시절, 유해진이 보여준 후련한 보복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영화 속 폭력이 위험해지는 건 이미지를 넘어 상징적 질서의 정상수행으로 넘어오는 순간이다(현실에서조차 이 정도 앙갚음은 폭력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 감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당연한 응징으로 봉오동 전투를 그렸다지만, 폭력의 과잉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맹목적 반대와 혐오와 증오를 ‘당연한 응징’으로 치환시킬 태세다. 일본군의 극악무도와 독립군의 대응 이미지가, 시대 공기와 만나 담론의 여지를 봉쇄하고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대자보로 읽히는 까닭이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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