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새 - 그림 속의 새는 무얼 바라보나
피카소와 새 - 그림 속의 새는 무얼 바라보나
  • 승인 2019.08.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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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예술 작품 속에도 새는 많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앙티브에 갔을 때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돌로 쌓아진 한 성채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Muse´e Picasso, 즉 피카소 미술관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독재자 프랑코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한 피카소가 머문 곳이었습니다.

비스듬히 올라가는 입구 겉벽에는 굵은 눈의 피카소가 부엉이를 안고 있는 모습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피카소는 부엉이를 안은 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문득 피카소에게 부엉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럽 쪽에는 어디에서나 부엉이 인형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와 함께 다니기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곳 사람들이 부엉이 인형을 장식품으로 많이 쓰고 있는 것은 지혜를 많이 기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1820년 유명한 그의 저서 《법철학》 머리말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의미심장한 경구(警句)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원래 미네르바의 신조(神鳥)는 까마귀였다고 합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 까마귀는 미네르바의 비밀을 누설한 죄를 지어 쫓겨나고 그 자리에 부엉이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엉이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부엉이는 원래 레스보스 섬의 아리따운 아가씨였는데, 자신의 아버지에게 연정을 품은 죄로 해서 부엉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낮에는 웅크리고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활동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엉이의 부끄러움은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원초적인 부끄러움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언급한 것은 지혜의 학문 철학은 낮이 지나고 밤에 그 날개를 펴는 부엉이처럼, 앞날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이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썼다고 합니다. 즉 앞날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 학문을 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인간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므로 이를 경계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피카소가 부엉이를 안고 사진을 찍은 것은 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예술에 정진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털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그림이 팔리지 않아 고생하던 피카소는 아르바이트 일꾼을 고용하여 화랑마다 찾아다니며 다음과 같이 묻게 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고 하니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화랑에 피카소의 그림이 있습니까?”

세속적인 명예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던 피카소의 한때 모습은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피카소는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를 안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운 부엉이를 안고 자기 고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니 무언가 기품어린 회화 작품과 발코니의 조각 작품도 경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방 한 칸을 고스란히 채우고 있는 세라믹 접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작품들 가운데에 상당수가 새 그림으로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세라믹 접시는 액자에 담겨져 벽에 걸려있었는데 여러 종류의 새가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앞과 옆 등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본 모습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웃는 새, 노래하는 새 등 표정도 다양하게 나타나 있어서 더욱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피카소는 새들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요? 분명히 인간의 모습을 새에게 투영시킨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래저래 새는 인간의 삶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하는 가장 가치로운 예술 활동에서도 새는 상징과 비유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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