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신명준 ‘낙원의 형태’ 개인전
봉산문화회관, 신명준 ‘낙원의 형태’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19.09.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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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현실, 낙원은 어디에
고장난 모니터, 잘린 호스…
버려진 사물서 낯섦 발견 유도
봉산-유리상자신명준전1
신명준 ‘낙원의 형태’전이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서 10월 20일까지 열린다.

청년 세대를 떠올리면 미안함이 몰려온다. 경제적·사회적 압박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황들이 청년들을 따라다닌다. 청년들은 연애·결혼·출산까지 포기하는 세대다. 오죽하면 88만원세대, 삼포세대나 N포세대라 했을까? 인생의 출발선에서 삶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청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부조리와 무의미로 가득 찼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 기성세대의 미안함이 비집고 들어간다.

청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청년작가 신명준은 “인생은 분명 살 가치가 있다”고 단호하게 응수한다.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전시 제목을 ‘낙원의 형태’라고 지은 것만 봐도 그의 세계관이 마냥 염세주의로만 흐르지 않음을 직감케 한다.

“낙원의 형태는 제각각일 수 있다고 봐요. 화려하고 왁자지껄 할 수도 있고, 소박하고 조용할 수도 있죠.”

신명준 개인전 ‘낙원의 형태’전이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에서 최근 시작했다. 전시장 중앙 바닥에 무대처럼 마련한 공간에 밀대 봉, 잘려진 호스, 부러진 사다리, 고장난 모니터, 낡은 라바콘, 양동이, 벽돌, 자투리 그물망, 깨진 거울, 주차금지 표시용으로 쓰린 팔레트, 비닐로 싼 식물화분 등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전시장 사각 모서리에 설치한 4개의 기둥이 작가가 구현한 세상이 ‘낙원’임을 암시한다.

“기물들은 모두 버려진 것을 수집한 것이고, 기둥은 신전의 기둥”이라고 했다. “비록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해 만든 세상이지만 제가 표현한 세상은 분명 ‘낙원’이에요.”

청년 특유의 반항정신이나 비판의식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현실은 청년들에게 가혹하다. 그들을 향한 다양한 지표들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럼에도 신명준은 현실세계를 ‘낙원’으로 표현했다. 지독한 역설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작가 역시도 “관람객들이 ‘낙원’이라는 제 작품을 보고 ‘역설’이라고 의심한다”며 눈빛을 흐렸다.

그러나 그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벤트”라는 표현을 쓰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어진 환경에서도 낙원을 발견할 수는 있어요. 일상을 낯설게 보는 거죠. 그럴 경우 제가 알던 세상은 또 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죠.”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사물들에서 낯설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낙원으로까지 연결하는 신명준. 그가 버려진 사물들에서 발견한 가치는 일상의 소중함이다. 낙원이야말로 우리 일상 가까이 있다는 것. 이때 전제가 따라붙는데, 일상의 비틀기 또는 낯설게 보기다. “일상을 낯설게 볼 때 평범한 일상이 낙원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작가가 버려진 일상의 사물들에 눈길을 준 것은 특별한 개인사와 관계됐다. 그는 얼마 전 타계한 독립유공자 신재모 선생(96)의 손자다. 신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대구 진우연맹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무정부주의 계열 운동을 펼쳤다. 해방 직후 지어진 신 선생 소유의 단독주택을 신명준의 부친이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버려진 사물들을 만났다.

“제가 살던 집이 폐가로 방치돼 있다 전시장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항상 봐오던 일상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죠. 그 시건을 ‘낙원’으로 표현했죠.”

그가 일상에서 ‘낙원’을 발견하려 발버둥쳐도 현실의 엄중함은 존재한다. 그의 어깨위에도 여느 청년들이 느끼는 고뇌가 얹혀있다. 그러나 작가는 절망보다 극복하는 편에 섰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실을 차라리 ‘휴가’나 ‘낙원’으로 명명하며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일상을 ‘휴가’로 인식한 ‘쉬어가도 좋지 않을까’(2016)와 그 어떤 바람에도 주체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작품 ‘‘산’ 혹은 ‘별’이 된다면 조금 덜 흔들리려나?’(2017), 자신이 쉴 장소를 스스로 만들고자 하는 태도를 담은 ‘낙원행’(2018)과 ‘낙원의 형태’(2019) 등의 전작들에 그 기류들이 흐르고 있다.

“힘든 일상이지만 휴가처럼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계속 작업 할 수 있으니까요. 일상이 힘들게만 다가오면 작업할 의지마저 꺾이고 말테니까요.” 전시는 10월 20일까지며, 시민참여 워크숍은 21일 오후 3시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053-661-350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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