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하기 나름’이라는데
‘자기하기 나름’이라는데
  • 승인 2019.09.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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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입추(立秋)가 지나고 무더위가 조금씩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던, 8월 하순. 「2019 DAC인문학극장」 행사 일환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감동이 있는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탐구하는 강연 사업으로, 주관기관인 대구문화예술단은 “기술혁신과 트렌드의 변화가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인문학적 소양을 제공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강의는 문학과 역사, 철학 등으로 나흘 간 진행되었지만 모두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와 네 번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날 강의는 객주, 활빈도, 홍어 등 장편소설로 유명한 김주영 소설가의 ‘문학, 고전의 위로’라는 주제로, 꾸밈없이 솔직담백한 그의 삶과 사상과 문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일부 방청객의 질문에 대해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 시원스런 대답도 좋았다. 마지막 날 강의는 100세이신 김형석 철학자의 ‘인생,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주제였다. 시종일관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보석 같은 말씀을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과 귀를 집중해야 했다. 어쩌면 강의라기보다 인생 선배로서 삶의 경험과 가치를 들려주는 이웃 어르신의 한겨울 군고구마 같은 따뜻하고 구수한 이야기였다.

두 강사의 강의 중 공통점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살아가면서 성공이나 행복,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과정은 모두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를 예로 들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희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존중할 줄 알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래,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표현을 지극히 당연한 이치로 여기고 있다. 그렇게 배우고 익혀왔으며,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그런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사건으로 그 말을 뿌리째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과 청년들에게 허탈감과 혼란을 안겨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금과 흙 등의 수저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태어난 배경이나 부모의 권력과 지위가 노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어떤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들이 인근 지역의 장래가 기대되는 특성화고교 입학을 위해 응시를 했다가 면접전형에서 1, 2위를 다투던 경쟁자에게 밀려 침울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조금만 보탬이 되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듣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보다 실천이 더욱 중요한 일부 권력층이나 지도층 가족들은 어찌하여 높고 안락한 곳만을 향해 가려는 것인지. 혹자는 ‘부모를 잘 만나기 나름’이라며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드러낸 평소의 소신이나 주장과 내면의 행동이 크게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몰랐다’거나 ‘관여한 바 없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은 당사자 주변에도 있다. 결탁이나 공모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한 통속의 사람들이다. 서류 상 사실과 다르거나 기준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엄격하게 걸러내야 하는 지위의 인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신뢰와 긍정, 희망과 보람, 성취감과 행복 등의 단어를 가슴에 새기며 정정당당하게 걸어가는 길이 떳떳하고 진정한 가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김주영 소설가가 차분하게 들려준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Alexsandr Pushkin)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의 구절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떤 위로가 될는지. 평범하고 선량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듣는 ‘인문학 강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도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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