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죽음 초월 동양사상 흡수 ‘화업 50년’ 총망라
삶·죽음 초월 동양사상 흡수 ‘화업 50년’ 총망라
  • 황인옥
  • 승인 2019.09.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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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예회관 ‘권정호 회고전’
1971-2019년 작가 시기별 작품
해골·소리 연작 등 100여점 선봬
인터뷰 등 관련 아카이브도 소개
권정호
권정호 작가
 
1985 어느날밤
권정호 작 ‘어느날 밤’(1985·국립현대미술관소장).
 
2014뿌리
권정호 작 ‘뿌리’(2014).

작가 권정호의 작품세계에 대한 선입견은 ‘강열하다’ 였다. 해골이라는 무거운 소재, 수백에서 수천 개의 해골이 가지는 규모, 삶과 죽음이나 음양론 등 동양의 정신성에 대한 집중도 등은 그의 작품세계를 강하게 각인하게 했다. 그러나 대구문화예술회관 ‘권정호 회고전 1971-2019’전은 그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는 전시로 부족함이 없었다. 시기별로 정리한 작가 인생 50여년 간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권정호를 만났기 때문.

평면부터 설치까지 아우르는 매체의 다양성, 추상과 신표현주의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함, 개인사에서 사회문제 그리고 형이상학까지 건드리는 거침없는 지성 등은 작품의 깊이와 작업에 대한 작가의 진정성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해골, 점, 선이라는 조형요소를 견지하면서도 다양한 변주로 구사해 내는 탁월성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권 작가가 “하나의 원리만 달통하면 다 통한다”며 담담하게 표현했다. “하나 하나 변화는 있지만 전체 덩어리는 하나에요. 서예의 하나의 획만 하면 모든 글씨가 다 이루어지듯 저 단위 하나가 수많은 단위의 증식의 한 부부인 거죠. 모든 게 하나고 하나가 모든 것인 이치죠.”

권 작가의 작품세계는 미국 유학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미국 유학은 일대전환기였다. 이 시기에 서양적인 표현법을 적극 수용하면서 현대미술의 확장을 모색했고, 동양문화권에 속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 구사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서양의 그릇으로 동양의 음식을 담으며 동·서양의 초월하는 근원으로서의 현대미술을 모색했다.

권 작가가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떠난 미국 유학이었지만 그곳에서 물질만능주의를 이끄는 서구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미국에서 일본을 통해 이식된 현대미술이 아닌 서양 현대미술의 본류를 만났죠. 그런 요소들이 저의 정체성과 부딪히면서 작품에도 변화가 찾아왔어요.”

권 작가는 대구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1세대 작가다. 현대미술운동이 일어나던 시기, 대구는 많은 작가들이 미술의 근원을 찾는데 몰두했고, 권 작가도 시대적인 흐름을 따랐다. 당시 그는 미술의 근원을 표현하는 매개로 추상을 선택했다. 추상에 대한 선호는 스승이었던 고(故) 정점식 교수와 당시 미술계에 파급된 남관의 영향이 있었다. 이 시기에 그가 미술의 근원으로 지목한 것은 ‘점’이었다. 조형적인 원초로 인식하며 추상으로 녹여낸 ‘점’ 시리즈는 창호지 형태의 점을 그리거나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점’은 동양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영향이 있었어요. 특히 서예 수련의 영향으로 동양에서의 점은 조형의 원리이자 시작임을 깨달았죠.”

‘소리’ 연작과 ‘해골’ 연작은 권 작가의 대표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미국 유학 이후에 탄생했다. ‘소리(SOUND)’ 연작은 1984년 처음 발표했다. 작품의 출발은 ‘소음’이었다. 미국 유학 시기 만난 의외의 복병인 ‘소음’ 때문에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 버려진 스피커 3개에 눈길이 갔고, 주워온 스피커로 ‘소리’ 연작을 만들었다. ‘스피커’로 개념적인 ‘소리’를 구현하고자 시도했다. 작품은 주워온 스피커를 캔버스에 오브제로 올리거나 스피커 형상을 그리고, 여백에 점을 찍는 식으로 구현된다. 점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에 대한 은유였다.

“1980년대의 소리 연작에는 음과 양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이기일원론을 대입했어요. 지성과 감성을 음과 양이라고 할 때 스피커는 ‘양’,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은 ‘음’에 속했죠.”

‘해골’ 연작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병원에서 목격한 인골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작가는 해골이라는 도상(圖像)에 삶과 죽음을 너머 음양론, 이기이원론 등의 동양철학을 대입하기도 하고, 대구 상인동 지하철 사고나 대구지하철참사 같은 국내사건과 전두환 시절의 군부독재의 억압 등의 사회현실까지 아울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나 정신, 시대상을 미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해골’은 그 모든 개념을 표현하는 도상이었어요.”

1991년부터 2002년까지는 ‘하늘’ 연작과 ‘선’ 연작이 주가 됐다. 이 연작들의 공통점은 선이 조형의 중심을 잡고 있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해골을 바탕에 깔았다. 해골의 해체가 선으로 발현된 것. 해체는 생명을 다한 존재가 기(氣)의 형태로 흩어지는 현상과 개념적 일체를 이뤘다. 해골이 육신의 백(魄)에 해당된다면, 기(氣)는 혼(魂)의 상징이었던 것. ‘하늘’ 연작은 일정한 색채 안에서 비정형의 면으로 체계를 구성했다. 면을 변화 있게 배치해 기의 흐름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선’ 연작에서는 ‘도형’, ‘원형질’, ‘문자’, ‘선’ 등의 추상성이 두드러졌다. 이 선들은 조형원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험적인 몸의 감각에 대한 표현이었다. 동양화의 일필휘지였다.

“서예에서 나온 선은 동양문화에서 기호 체계에요. 형상의 단순화된 표현인 선은 서양적인 문화와 다릅니다. 평면적이고 사변적이죠. ‘선’ 연작은 직접적인 표현인 ‘해골’의 해체에요. 본질에 해당되죠. 그래서 내면적으로 착 가라앉아 울려 퍼지는 지점이 있어요.”

2010년부터 매체의 다양화가 두드러졌다. 2010년대에 들어 작가는 닥으로 만든 입체적인 속이 텅 빈 형식의 해골을 고안했다. 입체해골은 규모와 형식에서 다양함을 선사했다. 속이 비어있음으로 인해 가변적이며 해체적인 형식이 더욱 유리해졌고, ‘골고다’와 ‘생명의 탄생’과 같은 입체적인 평면 시리즈를 가능케 했다. 주제면에서 초기 평면 작업에서 억압이나 불안 등 현대인의 심리와 감정을 상징했다면, 입체 해골에서는 ‘골고다’, ‘생명’ 등의 종교적 암시와 ‘미래’. ‘시간’, ‘명상’ 등 철학적인 명제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 특히 ‘죽음’과 함께 인류 철학의 대표적인 주제인 ‘시간’을 구현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수백에서 수천개의 해골을 집적해 시간성이 구축됐어요. 하나의 해골이 한 명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60~70년을 품고 있게 되겠죠. 그것이 수백, 수 천 개 모였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중첩돼 있겠어요.”

작가는 추상으로 시작해 신표현주의를 거쳐 더욱 심화된 추상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법 때문에 그를 형식주의자로 분류할 여지도 높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형식주의자가 아닙니다. 정신 속에 형식을 만들고 형식 속에 정신을 잃지 않았죠. 정신을 위해 형식을 사용한다는 철학은 내 사고의 신앙이고, 나의 확신이었어요.” 50년간 현대미술에 집중하면서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동양의 감각, 동양의 정신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동양인으로서 가지는 선험적 경험을 어떻게 서양적인 표현방법으로 보여줄 것인가”였다. 그릇 자체보다 그릇 속에 담겨야 할 내용이 작가가 추구한 예술의 핵심이었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했어요.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제 이야기를 해 왔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성숙한 사회로 나아기를 염원하는 도구로 현대미술을 선택했던 권정호. 현대미술은 그가 “유일하게 그리고 누구의 간섭 없이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던 분야”였다. 이는 퇴임 후 그의 행보가 더 빨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미술은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기도 하고, 언제나 어느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자 노동입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권정호의 미술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입니다.”

1971~2019까지의 작품 100여점과 작가 관련 아카이브, 인터뷰 등을 소개하는 문화예술회관 ‘권정호 회고전 1971-2019’은 21일까지, ‘작가와의 만남’은 7일 오후 3시. 참가 접수는 053-606-6152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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