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청소리(갈대청에 의한 소리)
[문화칼럼] 청소리(갈대청에 의한 소리)
  • 승인 2019.09.0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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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대금을 사전적으로 설명하면 중금, 소금과 함께 신라 삼죽으로 일컫는 가로저의 하나로서 속칭 ‘젓대’로 통하는 우리 고유의 횡취 관악기이다. 그리고 우리 전통음악에서 대금은 기준 음을 제시한다. 즉 평균율에 의하지 않고 대금의 음(황종)에 모든 악기가 음을 맞춘다. 오방색 중 동서남북의 가운데 즉 세상의 중심을 나타내는 색이 황색인 것처럼 대금의 기준 음을 황종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금은 많은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전통악기로써 국악사운드의 허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악에 대단히 문외한인 나는 대금 연주를 듣던 중 이상한 점을 느꼈다. 어느 날 한음에 두 가지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매우 궁금했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알아본즉 그것은 청이 떨리는 소리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청은 갈대청을 뜻한다. 보통의 대금소리가 맑고 둥근 소리라면 청에 의한 소리는 찢어지는 듯하면서도 힘차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 것이다.

나는 성악을 전공한 관계로 오히려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하기가 쉽지 않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분석하며 듣게 되고, 좋지 않은 것에 더 귀를 기울이는 비판적 시각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그다음, 나는 내한하는 정상급 오케스트라 공연은 형편 닿는 대로 가서 듣는 편이다. 좋은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 두 번 중 한번은 크게 감동한다. 완벽한 균형미와 물샐틈없는 사운드 그리고 지휘자의 멋진 해석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감동 시키는 것이 있다. 국악 공연 중 좋은 소리를 들을 때가 그렇다. 판소리 하는 사람이 소리를 낼 때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 내는 꽉 찬 소리, 사람의 폐부를 뚫는 듯한 가장 원초적인 소리. 그것을 통성이라 하는가? 아무튼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요동친다. 가슴속에 한두 가지 아픔을 품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흔히들 한이 담긴 소리라고 하는 통성을 들을 때 이런 온갖 맺힌 것이 쓸려 내려가며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바로 이런 것을 대금의 ‘청소리’에서 느꼈다.

청이란 갈대의 속껍질을 말한다. 대금 연주에 필요한 이것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갈대, 이를테면 순천만의 갈대가 좋다. 그것도 단오로부터 1~2주 지난 때의 갈대가 가장 상태가 좋다고 한다. 뻘 밭에 들어가 채취를 하는데, 뿌리로부터 짧은 몇 마디 지난 첫 번째 한 뼘 정도 되는 마디의 속껍질이 으뜸이다. 채취한 갈대 몸통을 날카로운 칼로 살살 빚어낸다. 그래서 나타난 속껍질을 잘 말아서 끄집어낸다. 이것을 밥솥에 쪄서 쓰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냥 쓰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렵게 구한 청을 대금의 청공에 아교나 녹각교로 붙여 놓으면 한두 달은 간단다. 은색의 두껍고 질기거나 혹은 얇더라도 질긴 청이 좋은 것인데 이런 것을 ‘은청’이라 한다. 나는 대금 연주자가 연주 직전 여기에 입을 맞추기에 좋은 연주를 위한 의식인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습도에 대단히 민감한 청에 입김을 불어 넣기 위함이었다. 연주 중에는 연주자의 호흡에 의하여 촉촉한 상태가 유지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무대 위의 조명마저 조심해야 할 정도로 이것은 민감하다.

사람의 목소리는 호흡이 기관지를 지나갈 때, 후두안의 얇은 두 개의 막(성대)이 마찰되면서 소리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을 잘 공명시키면 아름답고 힘있는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청은 사람의 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대금에 호흡을 불어 넣으면 청이 미세하게 떨린다. 이로 인해 소리가 증폭되고 심금을 울리는 특유의 색채가 만들어 지게 된다. 좋은 연주자가 좋은 청에 의한 소리를 낼 때, 이런 완벽한 합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우주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며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다음 주 화요일(9월 10일) 수성아트피아 무학홀에서 배병민(대구시립국악단 대금수석) 독주회가 열린다. 동아콩쿠르 금상수상자인 중견연주자로서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쉽게 가지 않고, 무겁고 진지한 레퍼토리를 선택하여 정공법으로 청중과 마주하고자 한다. 꾸밈없는 음악을 통하여 사람의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좋은 청의 도움으로 우주를 열어보고자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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