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된 전쟁의 참상 ‘하얀 상흔’
미화된 전쟁의 참상 ‘하얀 상흔’
  • 황인옥
  • 승인 2019.09.09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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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展… 리안갤러리 대구
사진·부조조각 등 매체 다양화
보도사진 이중성 평면으로 풀어
공포·연민 등 다양한 감정 정제
안도감 등 심리 상태 자각케 해
하태범_Illusion-다시
하태범 작.

하태범_Surface-2
하태범 작 ‘Surface’.




대학원 재학 때만 해도 작가 하태범의 예술론은 간명했다. “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당시 그는 불완전하며 유동적인 현실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존재의 이유나 물리학적 현상 등 형이상학이라는 고차원에서 예술을 논하고자 했다. 그랬던 그가 일순간 중동지역의 분쟁 이야기로 선회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독일 유학 초기에 만난 리비아 출신의 친구로부터 중동지역의 분쟁과 테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였다. “중동 출신의 친구로부터 중동 분쟁을 전해 듣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중동 분쟁에 대한 시선이 다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됐어요.”

우리가 중동 분쟁을 접하는 매개는 보도자료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에 국한된다. 작가 역시 보도사진을 통해 접했고, 자연스럽게 보도사진에 주목하게 됐다. 그는 보도사진에서 두 가지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중동지역의 정치와 종교 문제를 다루는 미디어의 일방적인 보도 태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이중적 태도였다. “보도사진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게 됐어요.”

보도사진 생산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관의 개입이다. 피사체, 각도 프레임 등에서 사진기자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사진기자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현실 인식을 방해하거나 조작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죠.” 작가 자신도 중동 분쟁에 대한 정보를 서구의 일방향적인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리비아 친구를 만나면서 태도가 변했다. “리비아 친구를 통해 한 사건을 여러 가지 상반된 입장과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런 시각에서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가능해 졌어요.”

이중적 태도는 보도사진을 소비하는 소비자에게도 적용됐다. 뉴스 소비자들이 보도사진을 처음 접할 때의 감정은 연민이다. 전쟁난민과 다름없는 동화를 느끼고 강한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동일한 사건의 보도사진을 접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감정선은 미묘하게 변화한다. “그것이 내 일이 아닌 것에 안도감이 밀려오게 되죠.” 전쟁의 참상에 몸서리쳤던 첫 마음이 중립적인 태도로 돌변하며 심리적 거리감을 두게 되는 현상이다. 작가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폭력성’에 해당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조각을 전공한 작가가 보도사진에 담긴 이중적 태도를 풀어내는 장르는 의외로 사진이다. 사진은 조각의 한계를 보완하는 매체로 선택됐다.

“3차원의 조각으로 구현할 경우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덩어리에 국한되죠. 그것은 직접적이지만 확장성에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평면의 형식을 취하는 사진에는 의식의 지평을 확장할 여지가 넓죠.”

장르의 파괴, 장르의 융합이 대세다. 작가도 사진이나 부조조각 등 매체적 다양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 조각 전공자다. ‘어떤 방식이든 조각의 흔적이 작품에 녹아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해진다. 그때 작가가 옅은 미소를 날렸다. “먼저 보도사진 속 이미지를 입체 모형으로 만들죠. 그 만들어진 모형을 카메라에 담죠.” 선 조각, 후 사진이라는 것.

제작한 모형은 보도사진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작업과정에서 제거와 변형이 가해진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제거하거나 건물 잔해를 축소하는 식의 행위를 더한다. “모형을 만드는 과정에 보도사진과 다른 내 의도가 더해져서 사진 이미지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죠. 사진기자가 사건을 왜곡해 찍는 행위에 대한 비판이죠.”

최근 그는 사진이 아닌 부조조각을 시도했다. 종이와 금속재료를 커팅해 보도사진 속 이미지를 부조로 재현한 ‘surface’와 ‘facade’ 연작이 대표적이다. 작가가 부조조각을 “재현된 실재”라고 언급했다. 부조조각은 연극성의 부각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작가는 3차원 부조조각으로 재탄생시킨 파괴된 건축물의 파사드를 원형대로 만들지는 않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만들었던 입체 모형의 경우처럼 제거와 변형을 가미했다. “폭력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중적 태도를 허구적 실재로서 원본과 상이한 하나의 확장된 시공간으로 드러냈어요.”

사진과 부조조각에 흰색 이외의 색은 배제된다. 흰색은 적나라한 전쟁의 참상을 미화하는 한 축으로 활용된다. 일종의 미화를 위한 장치다. 작가에게 흰색은 전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으로 느끼는 공포와 고통, 연민과 절망 등의 감성을 제거하고 정제하기 위한 기제에 해당된다.

“누군가의 참상을 즐기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재의 심리 상태를 자각하는데 흰색이 활용되죠.” ‘폭력’을 카테고리로 보도자료를 활용해 미디어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하태범의 대구 첫 전시인 리안갤러리 대구 ‘White-facede’전은 10월 19일까지. 053-424-2203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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