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져가는 스레이트 지붕 창고 위에
가을이 소리 없이 내려와 앉아있다
자두나무 잎사귀와 붉은 감나무,
누런 호박과 은행나무, 키 큰 메타세코이아까지
오래전 내린 햇살을 데리고
가을은 한없는 가을로 번져가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사흘째 고구마를 캔다
고구마 밭고랑 여남은 개중 가장 짧고 볼품없이 보여
맨 마지막까지 남은 고랑이다.
별 기대 없이 앉아서 캐는 고랑에서,
고구마가 줄기마다 빼곡히 달려 있다
한 줄기에 많은 것은 여덟 개, 작은 것도
커다란 고구마가 세 개씩이나 발갛게 달려 나온다
겉보기와 너무 다른 고구마의 내실이다.
나도 고구마가 되고 싶다
고구마가 되어 줄기 마다 바알갛게 달려
주님께 기쁨 드리고 싶다.
◇박영미= 경북 청도 출생. 2007년 <사람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거룩한 식사>
<해설> 고구마를 캐다 보면 그 생산성에 놀라게 된다. 한자 남짓한 고구마 줄기를 흙에 꽂아 두었는데 두어달에 커다란 고구마가 줄줄이 엮여 있으니 어찌 경이롭이 않은가? 우리가 농사라고 짓지만 그 결실의 이면에는 결국 신이 배려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김연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