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부모님을 향한 관심과 배려의 시기
명절-부모님을 향한 관심과 배려의 시기
  • 승인 2019.09.1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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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과교수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노인에게 유병율이 높은 질환을 전공으로 20여년 진료하다 보니 여러가지 측면의 경향성을 보게 된다. 전문적인 통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경험적인 경향성으로, 명절 후의 외래에 기억력 저하를 비롯한 노인성 질환이 의심된다는 걱정으로 자녀를 동반한 노인 환자들이 증가하는 부분도 한 예이다.

사회의 고령화는 독거노인의 비중 또한 크게 높여, 2018년 기준 1인 가구는 29.3%,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비중은 19.1%라 한다.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이라 할지라도 자녀가 직장을 가지고 있을 경우 실제의 생활은 독거에 가까울 것이고 독거노인류의 비중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유기적이고 복잡한 사회를 바쁘게 살아가는 자녀들이 고령의 부모들과 그나마 긴 시간 접촉할 수 있는 시기가 명절일 것이다. 긴시간 운전 후에 찾아뵙는 고향의 부모님, 연휴로 쉬는 가운데 오랜만에 긴대화를 갖게 된 가족. 편안함이며 그리움, 설레임이 앞서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자녀들은 금세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함께 오지 않은 손주를 찾고, 늦게 올 거라는 대답에도 잠시 후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친척 어른의 야물딱진 손끝은 언제나처럼 풍성한 차례상을 차려내셨지만, 중요한 음식 한두 가지를 빠뜨려 초로의 며느리가 급히 방어(?)했다고 한다. 매년 차례상의 제문을 직접 쓰셨던 아버지는 한두 글자가 떠오르지 않고 문장이 안된다고 하시다가 결국 장남에게 붓을 넘기셨다. 깊은 밤 고함소리에 달려가보면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며 무서워하는 어머니만 계셨다. 이웃 어른은 식사도 거의 않으시고 자주 넘어지며 방향감각을 잃는다고 하셨다. 또다른 이웃은 간혹 멍해보일 때가 있는데 요즘 심해진 것 같다고 어른들이 걱정을 하신다.

명절후의 외래에는 이런 어르신 신규 환자들이 늘어난다.

그렇다. 위의 어르신 환자들은 자녀들이 걱정한 것처럼, 이전과 다른 인지기능저하가 있고 생활속에 문제가 보이는 치매이다. 이제는 치매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1차적인 중요 정보원은 함께 생활하는 혹은 자주 접촉하는 보호자이다. 그러나 평소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기에 명색이 자녀이지만 정확한 정보를 의사에게 주지 못한다. 복잡한 문진과 신체검진, 뇌영상검사 후에 알츠하이머병, 혈관성치매, 뇌전증, 영양결핍(전해질이상)에 의한 치매로 진단하고 치료에 들어갔다. 뇌전증이나 영양결핍에 의한 치매는 치료 후 몰라보게 좋아지니 같은 치매라도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자주 통화하고 찾아뵙는데 왜 자녀들은 부모님의 인지기능 저하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드라마에서 보는, 가족을 몰라보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치매는 아주 진행된 상태이다. 초기치매의 경우 일반인들은 경증의 건망증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당연히 일상적 대화에 지장이 없고 사회생활, 집안일도 정상적으로 수행한다. 약간의 깜박하는 증상 외에는.

또한 자녀들은 부모님의 인지기능 앞에 ‘나이’라는 방어막을 세우고, ‘우리’부모님이라고 뇌를 리셋시키면서 모든 증상에 관대해지기가 쉽다. 그러다 보니 이웃들이 알고 있던 부모님의 기억저하, 길찾기 장애가 자녀인 내게는 ‘송편도 예전처럼 만드시는’, ‘농사일도 이전처럼 잘 하시는’, 그러나 ‘약간 건망증이 있고 고집이 세어진 부모님’으로 윤색된다. 자녀는 명절날 부모님의 이상행동에 놀라서 병원을 찾는다. 멀쩡했는데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경험적으로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매뉴얼대로 응급 뇌영상부터 시행하고 ‘갑자기’가 아님을 확인 후 일반적 진료수순을 밟는다.

일상적이고 짧은 익숙한 만남과 대화에서 바쁨을 가장한 배려의 부재는 어른들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힘들게 한다. 그러나 몸이든 정신이든,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자신의 변화를 알려주고, 내 시간을 써서 배려하는만큼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또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해가 갈수록 명절 후 차창 뒤에서 손을 흔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더욱 애잔해진다. 나이가 들며 여러 경험을 하고, 이제서야 마음으로 윗세대를 이해하는 부분이 늘어가는데, 정작 같은 시간대를 살아갈 날은 더 줄어들어 간다는 점이 인생의 잔인함인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간에도 명절은 있고, 명절이 아니라면 주말에라도, 그게 아니라면 전화로라도 부모님을 가깝게 살필 수 있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잔인함을 넘어서는 또다른 인생의 축복일 것이다.

오늘 저녁 일을 끝낸 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질 부모님과의 길고 편안한 대화가 정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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