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애달픈 기억들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애달픈 기억들
  • 황인옥
  • 승인 2019.09.16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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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174 ‘이인석 개인전’
지난날 구구절절한 감정 소환
혼합재료 바르고 굳히기 반복
표면 갈아내 ‘갈라짐’ 형상화
평면·설치 기록 아카이브 선봬
이인석작-Theredtree
이인석 작 ‘The red tree’.
 
이인석작-그리고다시Abrasax
이인석 작 ‘그리고 다시 Abrasax’.



작가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긴 시간을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전문대학에서 응용미술과를 선택할 때만 해도 작업에 대한 간절한 희망은 놓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에 순응할 때도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지면 작업을 하리라”는 마음속 작은 불씨 하나는 꺼트리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작가의 꿈은 오히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찾아왔다. 정확히 10년 전, 2009년 때의 일이었다. “부도를 맞은 경제적 상실감 속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을 하자’라는 결론을 내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이인석 개인전이 스페이스 174(대구 수성구 희망로 174)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갈라짐-‘틈’을 주제로 한 평면작업과 지금까지 소개했던 설치작업을 기록으로 남긴 사진 아카이브 등으로 구성됐다.

작업의 소재는 우리의 삶을 씨실과 날실처럼 견고하게 직조하고 있는 희로애락(喜怒哀樂). 그 중에서 시련이 핵심 재료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있다. 신이 유난히 그에게 가혹했던것 같은 기억 때문이다. 그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나? 다만 작업이 아닌 신파조 인생의 코스프레로 주목받기는 싫다”며 가혹했던 지난 사연에 대해 엠바고를 청했다. 그런데 막상 작업 얘기를 시작하자 수많은 인생스토리 중에서 슬픔, 고통, 죽음이라는 아픈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왔다.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희망보다 고통이 더 컸으니까요. 내일이라고 하지만 내일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나 존재할 뿐, 오늘 같은 내일의 연속선상에서 고민만 쌓여갔죠.”

슬픔과 고통과 죽음은 평면작업에서 거친 과정으로 드러난다. 건축재료인 핸디코트와 물감을 혼합해 패널에 바르고 굳히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갈라진 틈들이 생채기 같은 흔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표면을 갈아내면 형상이 드러난다. 그가 “갈라진 ‘틈’은 평탄하지 않았던 내 인생”이라며 “앞으로도 평탄하지 않을 내 모습”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게 ‘틈’은 경계와 경계가 소통하는 공간이자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통로에 해당되죠. 온전히 부정적인 개념이라기보다 희망이 배어있는 공간이죠.”

‘틈’이 은유법이라면 작품 제목은 일종의 정곡법이다. 구구절절한 감정들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파문 : 그들은 내게 왜 사느냐고 물었다!’, ‘눈물 : 나는 잘 죽고 싶다’, ‘BEYOND TIME: 해체된 가족’, ‘붉은 숲 : 그들이 사는, 내가 사는 세상은 붉게 보였을 뿐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기억 속에서 소환된 슬픔과 기쁨, 고통과 안식, 삶과 죽음 등이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난 겁니다. 이때 드러나는 갈라진 ‘틈’은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녹록치 않을 것같이 예감되는 제 인생의 모습 같은 것이죠.”

평면 속 형상은 힘에 겨웠던 기억의 한 조각들이다. 문득문득 뇌리를 스치는 이미지가 즉흥적으로 평면에 옮겨진다. 이때 작가만의 고유한 형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형상에 디자인적인 요소가 짙어지는 것. 이는 응용미술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으로부터 왔다. “힘들었던 시기 비 맞고 쏘다니며 보았던 연못 위 물방울,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사람이 그리웠던 기억들이 소환돼 형상으로 차용되죠.”

전시 제목이 ‘BEYOND TIME:好(호)·作(작)·質(질)’이다. ‘좋아하는 것(好)’, ‘만들어내는 것(作)’, ‘바탕이 되는 것(質)’을 의미한다. “언어유희처럼 들리겠지만 누군가 제가 근황을 물어보면 ‘호작질하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제가 좋아서 작업을 즐겁게 하고 있다는 말이죠. 호작질은 제 작업의 힘이니까요!” 전시는 27일까지. 053-422-1293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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