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名節)을 보내며
명절(名節)을 보내며
  • 승인 2019.09.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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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무더운 늦여름이 주춤거리는 사이 몇 차례의 비와 태풍이 연이어 지나갔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는 현수막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명절을 앞두고 정치인과 행정기관장에 전직을 내세운 사람들까지 경쟁을 하듯 이름을 알리려고 나서는 걸 보니, 괜히 쓴웃음이 났다.

명절(名節)이란 ‘오랜 관습에 따라 특정한 날을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에는 추석과 설이 있다. 민족의 대이동이 그 뜻과 의미를 말해주는 날이다.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덕담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큰 소리로 떠들고 웃기도 하니 어찌 좋은 날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문자나 전자우편,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도 많다. 넉넉하고 편안한 한가위가 되기를 기원하거나, 환한 달빛처럼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내용도 있다. 연락이 소원했던 지인이나 친인척이 연례행사처럼 밀린 안부를 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주변이 차량과 사람들로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길 위의 노점상에게도 일시적이나마 경제 활성화가 되는 것 같은 풍경이 보기에도 좋다. 더불어 매년 이맘때면 반세기가 더 지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낡은 필름처럼 되살아나고는 한다. 특히 떡 방앗간 앞에서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던 일들이 두고두고 훈훈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날이 갈수록 생활방식이 다변화하고 개성이 중시되다보니, 명절을 보내는 양상 또한 달라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살피고 손질하며, 어떤 이들은 고향 방문을 하고, 어떤 이들은 주변 정리와 밀린 과제를 해결하거나 건강을 위해 시간을 아끼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꿈에도 그리던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걷기 위해 배낭을 꾸리고, 가족 단위로 해외여행을 하면서 먼 곳에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는 호캉스(hocance, hotel과 vacance의 합성어)를 이용해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호텔 내에서 휴식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는 여행이나 달콤한 휴가의 기회로 활용되는 명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일일 수도 있다. 맏며느리 또는 장남 등으로서 전통적 관습과 역할에 얽매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며칠을 위해 잠을 설쳐가며 미리 걱정하고, 준비하고, 일을 치르는 과정이 매우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생기며, 오죽하면 명절 전후 이혼율이 크게 증가한다는 통계가 나왔을까. 그러나 그러한 불만도 적당히 포기하고, 기대하지 않으며, 적응이 되면 큰 힘들이지 않고도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면, ‘모르는 소리 하지마라’며 눈을 흘기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명절이 더욱 외롭고 쓸쓸한 사람도 있으니, 주변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실향민과 이산가족,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나 이주노동자.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인 노숙자나 찾아오는 사람 없이 요양원 등 공공시설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딱하기는 매한가지다.

명절을 보내며, 술렁거리는 사회 현상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현수막에 새겨진 문구나 듣기 좋은 인사말처럼 가족과 이웃이 모두 넉넉하고 행복한 한가위가 될 수 있다면, 그런 명절은 매달 한 번씩 찾아오면 좋겠다. 하지만 사회의 분위기가 벌집을 건드려놓은 듯 어수선하고 경제가 어려운데, 어떻게 편안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명절이 지났으니, 곳곳에서 펄럭이던 현수막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특정 시기에 경쟁을 하듯 반짝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평상시 주변을 돌아보고, 소통하며, 선정을 베풀어주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보름달처럼 밝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웃을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이 가벼울 때, 배려와 양보와 따뜻한 여유도 생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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