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감정 실어 ‘일필휘지’
일렁이는 감정 실어 ‘일필휘지’
  • 황인옥
  • 승인 2019.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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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갤러리 11월 2일까지 김동진展
한자 가독성 한계 봉착 새 가능성 모색
문자서 해체된 ‘획’ 전통수묵 확장 시도
현대미술과 소통 위해 감성 끌여들여
할
김동진 작 ‘喝(할)’

조형의 기본요소인 점, 선 면에 대한 환호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지만 표현방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양화는 ‘그리’고, 동양화는 ‘긋는’다. 서양은 시각적인 조형요소로, 동양은 정신성의 요체로 접근한 결과다. 오직 붓에 의지하느냐, 붓과 몸의 합일에 의한 에너지까지 표현하느냐의 차이였다. 그런 점에서 점, 선, 면에 대한 믿음은 동양이 더 견고할 수밖에 없다.

전통수묵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현대미술과의 접점 찾기가 당면과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선’이었다. 전통수묵의 조형적 해체로 남은 원질(原質)로서 ‘선’에 주목한 것. 강약이나 억양, 굵기를 활용한 ‘선’의 변주를 통해 관념에서 추상으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전통수묵예술의 탈 장르화였다. 40여년을 서예에 매진하고 서예의 현대미술로의 모색에 나선 김동진은 이 현상을 “현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맞출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과거 동양에서는 예술을 ‘문(文)’, 즉 개념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시(詩)와 서예(書), 그림(畵) 모두 개념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들은 시·서·화를 삼절로 수렴하며, 동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서예가로 살아온 김동진은 삼절 중에서 ‘서예’에 주목했다. 서예야말로 개념을 전달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라는 것. 그는 “서예는 문자의 조형성과 기록적 가치의 미학적 극대화”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서예의 ‘고유성’을 ‘개념 전달력’에서 찾은 것.

시·서·화를 동등하게 인식하는 ‘시서화일률(詩書畵一律)’은 현대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서예와 문인화를 두루 섭렵하려는 세태가 그렇다. 그러나 작가에게 만큼은 이 공식은 무의미하다. 그는 40여년 동안 서예만 팠다. 그런 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예의 현대미술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읽히는 것이 숙명’인 서예의 고유성, 즉 가독성의 문제에 부딪히면서 느낀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게 되면서 한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아무리 좋은 글귀를 써도 읽지를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어요.”

작가가 서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주목한 방법론은 ‘해체’였다. 서예를 ‘획’으로 해체하고, 해체된 ‘획’을 먹물 머금은 붓으로 일필휘지로 쓰거나 뿌리거나 부딪히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상형문자로부터 출발한 서예가 개념 전달이라는 관념적인 역할로 굳어왔던 것을 저는 형상의 기본요소로 환원한 거죠.”

서예는 이성의 예술이다. 필법, 장법, 서법, 서도, 법고창신 등의 이성적인 접근법과 문자를 텍스트로 하는 ‘가독성(可讀性)’을 숙명으로 한 탓에 핏기 가득한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적다. 김 작가는 바로 이 이성적인 형질에 주목했다. 서예에 감정을 적극 끌어들이는 것. 이성에서 감정으로서 이동이자 개념에서 추상으로의 변화였다. “서예가 현대의 시대상황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감성적 가치의 회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작가가 감정을 녹여내는 방식은 일필휘지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을 온 몸에 실어 일필휘지로 펼쳐낸다. 이 과정에서 서예가들이 숭상해마지 않는 서법은 권위를 잃는다. “문자의 짜여진 결구가 사라지자 자유가 찾아왔어요. 하지만 서예를 버리지는 않아요. 문자로부터 해체한 ‘획’을 통해 서예의 확장을 시도하죠.”

오직 서예로부터 출발해 현대미술로 확장하고 있는 김동진과 문인화로부터 출발한 작가와는 차별점이 명확하다. 서예 특유의 생동하는 기운이 압축적으로 담기는 것. 여기서 김동진만의 창작세계가 활짝 열린다.

“과거로부터 누적된 서법이라는 점에서 남의 글을 쓰는 느낌이 없지 않죠. 그러나 서법을 버림으로써 창작으로 나아가게 되죠.” 전시는 키움갤러리(대구 서구 서대구로 74)에서 11월 2일까지. 053-561-757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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