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실로 메워 회화 경계 확장
한땀 한땀 실로 메워 회화 경계 확장
  • 황인옥
  • 승인 2019.09.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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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전시공간 싹 ‘최희진展’
물감 대신 ‘실·캔버스 천’ 재료
전통회화 벗어나 독창성 추구
결과물보다 작업과정에 집중
평면·설치작품 10여점 선봬
 
작가 최희진
작가 최희진

 

작가 최희진이 그림을 그리는 재료는 ‘실(絲)’이다. 간혹 물감과 실을 혼용하기도 하지만 주제를 명징화하는 주연은 ‘실’이다. 물감은 주연을 빛나게 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지난 17일 시작한 비영리전시공간 싹에 전시된 평면과 설치 작품 10여점에 사용된 재료도 ‘실’이다. “실을 한 올 한 올 올리는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실을 엮어서 거대한 설치를 표현했어요.”

물감을 기본으로 하는 회화의 전통에서 벗어난 이유는‘부담감’이었다. “캔버스와 대면했을 때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싫었던” 것. 그때 물감으로 형상을 그리는 방식 대신 캔버스 천 두 개를 놓고 격자무늬로 잘라 씨실과 날실처럼 엮기 시작했다. 실 작업 이전에 캔버스 천 엮기가 먼저였던 것. 이후 실 작업으로 변화했다. 실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선택된 재료였다. “어머니가 미싱으로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실이 제게는 익숙했고, 문득 작업의 재료로 사용해도 되겠다 싶었죠.”

물감 대신 캔버스 천이나 실을 사용해 회화의 확장을 모색한 이유에 대해 최 작가가 “일반적인 재료나 방식을 따르는 것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며 특유의 작가정신을 언급했다. 그러나 전통회화의 입장에서 보면 물감이 아닌 실은 외도에 속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태도야말로 현대미술에서 지향하는 덕목임을 일찍 간파한 셈이다. “저만의 재료나 방식으로 작업할 때 흥미를 느끼게 되죠. 창작에서 독창성을 추구하는 태도야말로 첫 번째 덕목이라고 보죠.”

물감을 캔버스 천이나 실로 대체한 것에는 순응과 도전이 공존한다. 장르파괴나 재료파괴가 일상이 된 현대미술의 조류에서 보면 순응이지만 익숙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언급하면 도전에 속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의 즐거움이 매우 큽니다. 그것은 작가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캔버스 천이나 실을 사용하는 궁극의 목표는 ‘행위의 솔직함’이다. 최 작가는 작업의 결과보다 행위나 과정을 중시하는 부류다. 그녀는 캔버스에서 붓과 물감을 떼는 순간 작가의 행위는 사라지고 색과 형상이라는 결과치만 남는 것에 허허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실로 한 땀 한 땀 떠 올려 평면을 채웠을 경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마지막 실을 캔버스에 올리고 작업을 끝내면 그때부터 작가의 작업 순서가 캔버스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상태를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행위의 흔적이 실의 흐름으로 고스란히 남겨진 것. “실은 흔적을 남기는 역할을 하는데 흔적을 통해 제가 바라보는 지점은 작업 과정이에요.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 노동의 숭고함에 집중하려는 거죠.”

색과 형상은 그녀의 작업에서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간혹 보라색으로 물든 실을 쓰기도 하고, 형상을 그리고 실로 메워가기도 하지만 핵심은 행위, 즉 작업 과정자체에 있다. “형상과 색이 과정으로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극도로 제한하고 있어요.”

행위를 중시하는 근저에는 색과 형상에 집착하는 그림을 대하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정신이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진정한 예술일 수 있다는 반문을 과정 속에 담아낸다. 고정관념에 대한 비틀기는 캔버스라는 사각프레임에서도 드러난다. 캔버스 사각 모서리까지 실을 올려 모서리도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 “사각모서리에 실을 올리면 보는 빛의 방향과 양, 보는 시각에 따라 사각이 다르게 보여지게 되죠.” 전시는 30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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