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레트로는 살아있다…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백정우의 줌인아웃]레트로는 살아있다…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 백정우
  • 승인 2019.09.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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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식 원형 키보드. 타자기 소리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물건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대중과 함께한 문화는 쉽사리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진짜로 고마운 데 7초 만에 쓴 이메일을요? 70초 공들여 타자 친 거면 몰라도.”

메모나 질문 또는 감사편지나 답장을 항상 타자기로 치는 배우. 할리우드 톱스타 톰 행크스의 타자기 사랑은 정평이 나있다. 타자기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동호회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작업하거나, 수집하거나, 수리하거나, 악기로 사용하거나, 분해 재조립하여 조형물로 재탄생시키거나, 직업과 연령을 막론하고 타자기에 유별난 사랑을 바친 이들과 타자기 수리점 California Typewriter. 더그 니콜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우리 곁을 떠난 타자기에 대한 애정담긴 헌사이다.

인공지능과 생명복제로 눈을 돌린 21세기에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 매료된다는 것. 단순한 호기심과 트렌드 때문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타자기를 인류의 문명과 산업과 역사의 산물로 인식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만나는 이전 시대의 모습들. 35년 경력의 수리공은 말한다. “타자기는 미국의 상징이에요. 땀 흘려 직접 일군 이 나라의 기반이 된 노고를 뜻하죠.”

노작가는 타자기와 함께한 세월을 노동의 역사로 회상한다. 규칙적이고 정돈된 삶을 가능케 만든 도구로 그는 타자기를 첫손에 꼽는다. 샘 셰퍼드는 60년대 초반 구입한 스위스제 에르메스3000 타자기로 글을 쓰고, 데이비드 맥컬로프는 로열 스탠다드 65년 형을 지금까지 사용한다. 톰 행크스는 스미스 코로나를 최고 애장품으로 꼽는다. 코맥 매카시가 거의 모든 집필에 사용한 올리베티 타자기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21만 불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2011년 4월, 지구상 마지막 타자기 공장인 인도의 ‘고드레지 앤 보이스’가 문을 닫았다. 클로버와 마라톤 이름의 한국타자기가 생산을 중단한 건 1996년이다.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 1세대 컴퓨터 데스크톱과 랩톱의 미래도 어찌될지 모른다.

‘그것은 파괴될 운명을 제 안에 품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비명에 가지 않으려 이내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레트로를 이야기하지만 단지 아날로그적 삶을 찬양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숨결의 가치를 보듬는 마음을 전면에 드러낼 뿐이다. 시대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역사를 껴안는 방법에 관해 고민한다.

문 닫을 위기에 놓였던 타자기 수리점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를 되살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이었다. 인스타 등 SNS 덕분에 가게는 이전보다 번성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키보드를 샀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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