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에 간 시인에게도 겉치레의 값은 따라 다녔다
집안에서 대학 나온 사람이 자네뿐이라고 하는 바람에
십 만원 부의금 봉투 벌려 십 만원 더 넣고 말았다는
어느 가난한 시인의 변
거기에다 유명 시인께서 오셨냐고 했다면
그는 체면상 십 만원 더 넣어야 했을 것이다
집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하고
유명 메이커 붙은 옷 서너 벌은 있어야 하는 요즘 풍속에
후드득 소낙비 떨어져도 뛰지는 말자고
시대 뒤쳐진 인생 좌우명을 정해 놓았다 해도
시인도 눈과 귀와 입을 가진 이상 죽음 앞에서는
가진 것 다 털어 슬픔에 금전을 보태는
시인은 그런 문상객이 된다
폼생폼사로 두리번거리다 하루를 허비했더라도
번드레한 내일쯤은 가불 할 줄 알아야겠지
값없어 보이는 것에도 값을 매기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값으로 도저히 매길 수 없는 가난에겐
이 헐렁한 호주머니를 어쩌지?
◇이복희= 문학시대 신인상,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 회원, 구상예술제 금상, 시공간 회원,
낙동강세계평화문학상, 선주문학상 수상, 구미사우회 회원
<해설> 시인의 값은 얼마나 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회적 지위로 본다면 천석꾼은 될 것 같은데, 내실은 가난뱅이인 것이 시인이라 한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지 정신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이 부자인 시인의 값을 굳이 정한다면 천석꾼은 될 것 같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