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갤러리, 이상헌 개인전…나뭇결 따라 두드리고 깎은 ‘인간’
토마갤러리, 이상헌 개인전…나뭇결 따라 두드리고 깎은 ‘인간’
  • 황인옥
  • 승인 2019.09.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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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춤→몸짓 작업 확장
색 입힌 초현실적 신작 공개
조각가이상헌개인전
조각가 이상헌 개인전이 토마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사진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상헌.

마음 깊숙이 자리한 외로움이 빨래라면 질끈 비틀어 말끔하게 짜내고 싶었다. 외로움은 이상헌의 삶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외로움도 시간이 흐르면 곰삭을 만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외로움의 농도는 갈수록 농염해졌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나무를 파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꾸로 매달린 남자,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부유하는 남자, 가슴에 대못을 박은 남자들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그만 외로워하지 않겠니”하고. 그가 깎은 남자들은 실은 작가 자신이었다.

“유년기 때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저를 돌보기 힘들어 할머니댁에서 자라게 됐어요. 당시 5~6세로 어렸지만 외로움이 제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은 감정을 받았어요. 그때의 결핍인 외로움이 성장해서도 계속해서 따라다녔어요.”

조각가 이상헌 개인전이 대구시 중구 김광석길에 위치한 토마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사람과 나무 의자 등이 초현실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색채가 가미된 나무조각과 나무 본연의 모습에 오직 작가의 조각 행위만 더한 나무조각 10여점과 드로잉 9점을 소개하고 있다.

나무를 사용해 조각한 첫 시리즈는 ‘사람’ 연작이었다. 이 시기의 창작원은 ‘외로움’이었다. 나무에 작가의 행위가 가해질 때마다 대못이 박히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가위 눌린 상태의 형상들이 새생명을 얻고는 했다. 하나 둘씩 작품이 쌓여가자 상처에도 딱지가 앉았다. 작가와 나무가 혼연일체 되던 시기였다. “나무를 깎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정화돼 갔고, 외로움도 차분하게 가라앉았죠.”

‘외로움’과 대면하기가 잦아들자 ‘춤’이 그에게 왔다. 이른바 ‘춤-몸짓’ 연작이인데, 작업의 매개가 ‘춤’이었다. 상처라는 무거웠던 주제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지만 나무가 가진 아름다운 결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픈 열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주제 확장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춤 동작이 아무리 다양해도 나무로 표현할 수 있는 포즈는 한정돼 있었어요.” 그때 작가가 바라본 지점이 일상이었다. ‘몸짓’ 연작의 출발이었다. “일상의 몸짓이라면 제한이 없을 것 같았어요.”

이번 전시에는 ‘춤-몸짓’ 연작과 ‘몸짓’ 연작 그리고 색채가 가미된 초현실 조각들이 출품됐다. 초현실성은 일종의 타협점이었다. 예술성만 추구하기에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작품 판매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의 타협은 예술가가 안고가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그도 처음에는 돌이나 철,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이들 재료에서 나무로 넘어온 것은 뼈아픈 사연의 결과였다. 뇌종양의 발병과 수술 등의 투병기간을 거치면서 가장 자연적인 소재인 나무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것. 2002년의 일이었다. “뇌종양이 걸린 이유를 찾다가 섬유강화플라스틱 등의 재료들을 오랫동안 사용한 환경적인 이유도 배제할 수 없겠다 싶어 나무로 바꿨어요.”

흙은 자유롭고, 철이나 돌은 빠른 속도와 원하는 형태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나무는 수많은 물성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재료에 속한다. 썩고, 뒤틀리고, 금가고, 벌레가 먹는다. 죽어서도 살아서 만큼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재료다. 작가는 나무의 변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나무를 반을 갈라 속을 파냈다. 그가 “나무는 기다림과 타협을 요구하는 재료”라고 했다. “수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수종이라도 나무마다 다르고, 같은 나무라도 상단과 하단의 성질이 다르죠. 나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조각을 할 수 없게 되죠. 나무와 끊임없는 대화와 이해의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어요.”

작가가 나무와 소통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애완동물에게 쏟는 애정과 다르지 않다. 나무와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갖는다. 작가가 오전에 나무 앞에 앉으면 정으로 나무를 툭 툭 치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두드리고 만지는 행위를 반복하며 나무와 교감한다. 대화가 무르익으면 이번에는 나무가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향기를 내어주며 대화를 걸어온다. 그와 나무가 하나되는 순간이다. “작업을 하면서 나무가 저의 성장을 돕고, 저가 나무의 성장을 돕는 윈-윈 관계가 되죠.” 전시는 30일까지. 010-8244-1119.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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