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성, 을 갤러리 개인전 “근본적 목표는 양극단 균형 찾는 것”
박인성, 을 갤러리 개인전 “근본적 목표는 양극단 균형 찾는 것”
  • 황인옥
  • 승인 2019.09.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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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필름 디지털로 스캔
새로운 이미지 통한 착시 유도
기법 혼용 통해 진실 의심케 해
Inseong-Park_Floated
박인성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을 갤러리 전시장 전경 .

작가 박인성이 독일 유학 중이던 2015년, 아날로그 영화 필름 워크숍과 그룹전인 ‘Be Documentary’전을 병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작가가 작품 제작을 위해 찾은 소재가 독일 나치정권이 만든 정치 선전 영화 필름이었다. 그는 이 필름을 프리마켓에 구입했고, 아날로그 시대에 촬영된 필름에서 호기심의 촉을 세웠다. 당시 영화 촬영과 편집 기법이 궁금했던 것. “아날로그 영화 제작과 상영 기법, 특히 아날로그의 물성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구입한 필름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뇌리에 다큐멘터리(documentary)라는 단어가 스쳤다. 나치정권 선전을 위해 거짓으로 점철된 영화를 사실을 전달하는 기록 영화로 탈바꿈 시킨다는, 그야말로 발칙한 상상이었다. 그 순간 그의 손길이 빨라졌다. 필름을 필름 릴에서 길게 뽑아내고 한 컷 한 컷 자르기 시작했다. “스토리 순서대로 편집된 필름을 촬영 순서대로 재편집했어요.”

박 작가는 당시 영화가 기술과 여건의 한계로 이야기 전개 순서가 아닌 지역, 세트, 도구 등 장소 순서로 촬영된 것에 착안해 필름을 촬영 행위 순으로 재조합했다. “영화의 내용은 거짓이지만 행위를 기준으로 편집하면 행위적인 측면에서 기록영화가 되는 방식이었죠.” 이 과정이 더해지자 2015년 전시제목이었던 ‘Be Documentary’와 정확히 일치했다.

작가가 기존의 필름을 재편집하는 과정에 주제적인 측면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은 아니었다.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시각적인 드라마틱함도 놓치지 않았다. 시각적인 착시, 시각적인 만족도라는 가치도 충족시키고, 과거의 재료에 현대의 기술과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예술적 감성도 덧입혔다. “회화라는 미술의 본질에 보다 근접하면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도 강화하고 싶었어요.”

디지털 세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디지털의 전개 양상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감수성, 물질성, 공간성 등의 아날로그적인 가치가 속도성, 차가움,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로움이라는 디지털의 강점들 속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박 작가가 예술적 주제를 펼치는 매개로 주목한 분야도 ‘아날로그’다. “필름을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매체로 상정하고, 아날로그의 특성인 평면성과 미술의 회화성을 동시에 찾아가고 있어요.”

디지털과 핵심적으로 차별화되는 아날로그의 매력은 물성에 있다. 디지털 포토샵은 아날로그보다 시각적인, 또는 기술적인 효과에서 훨씬 드라마틱하지만 물질이 주는 감수성은 푸석하다 못해 건조하다. 작가가 촉촉한 아날로그 감성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매체로 주목한 것은 나치 시절 촬영된 필름과 현대의 기술 문명들 중에서 그와 친근한 필름스캐너였다. 이 둘의 조합은 과거와 현대의 아날로그의 만남에 해당됐다. “디지털 세상이 0과 1사이에서 일어나는 효과라면 아날로그는 실제로 물리적으로 현상학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공예적인 효과로 만드는 작업이죠.”

작품은 조각조각 잘라낸 영화 필름을 두 장 또는 세 장 또는 여러 장을 필름스캐너에 올려놓고 겹치거나 자르거나 떼 내는 행위를 가한 후 스캔하고 그것을 다시 인화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그가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되는 자신의 작품을 ‘스캔 그래피( Scangraphy)’라고 명명했다. “디지털적인 장비스캐너와 아날로그 필름, 그리고 저의 행위가 만나 재밌는 현상이 나오죠. 회화도 아니고 사진도 아닌... 내 작업실에서 스캐너 위에서 제 행위가 만난 기록이라는 점에서 당당하게 다큐멘터리라고 말 할 수 있죠.”

작가가 예술적 주제로 착안하고 실행에 사용한 필름스캐너, 아날로그 필름, 다큐멘터리 등의 개념들이 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점은 어디일까? 그가 “나는 근본적으로 양 극단의 균형을 찾아 간다”고 했다. “한쪽의 개념이나 현상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면 그 반대편의 입장에서 유효한 가치를 찾아 균형을 맞추는 식이죠.” 예컨대 디지털의 환호 이면에 있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돌아보고,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면에 또 다른 호도가 있을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의 속성에도 의문을 던지는 것.

필름에 행위를 가해 완성한 ‘스캔 그라피’ 연작과 검은색 모니터에 나타나는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과 빨강, 초록, 파란색의 천장에 설치한 조명으로 완성한 작품 등을 만나는 작가의 을갤러리 개인전 ‘부유하는 기록물(Floated Documentary)’전은 10월 19일까지. 053-474-48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박인성은 계명대학교 회화과를 거쳐 독일 뉘른베르크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올해 대국예술발전소 입주작가로 선정되며 국내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는 첫 개인전인 을갤러리 전시 이후 토탈미술관 주‘상하이 로드쇼’와 대구아트스퀘어 ‘청년미술프로젝트’에 참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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