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싱어송라이터 김강주 “한국적 소울 추구…사람냄새 물씬나는 가수로 살고파”
대구 싱어송라이터 김강주 “한국적 소울 추구…사람냄새 물씬나는 가수로 살고파”
  • 황인옥
  • 승인 2019.09.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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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가져온 기타의 ‘나비효과’
독학으로 노래·악기·작곡 섭렵
공부 곧잘해 고민없이 법대 진학
동아리 보컬 활동…일상된 취미
직업 모색 중 라이브카페 가수로
싱어송라이터 김강주 공연모습

비전공자에서 전방위 뮤지션 되기
다양한 무대 오르며 키운 실력
지역 방송·페스티벌 적극 출연
앨범·싱글 발매…대표곡 쌓여
각종대회서 실력파 수식어 획득

내 무대는 ‘전국’…주제는 ‘사람’
여수·광주 등 여러 지역서 활동
역사·사회문제 음악 반영 의지
사단법인 ‘카프스토리’ 설립
지역 뮤지션의 권익 보호 앞장

대구지역을 기반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가수 김강주(40·사진)가 “법대 출신의 가수라고 특별한 관심을 받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냐?”고 반문했지만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전공자 못지않게 비전공 가수들도 적지 않은 현실에 비춰보면 ‘전공이 무슨 관심거리일까’ 싶지만 음악과 법학은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합으로 다가왔다. 이에 대해 그가 “법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아직도 의외라고 보시는 분들이 있다”며 별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김강주가 가수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뇌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어린시절 꿈이었던 법관이 되기 위해 법대에 진학했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자 적성에 맞지 않았고, 대안으로 법무사와 공무원으로 방향을 튼 것 까지는 여느 사법고시생들이 거치는 수순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감이 밀려왔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이리저리 떠밀리는 저를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내면의 울림이 메아리쳤다. “법관이 아니라면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삶을 선택하게 됐어요.”

김강주는 싱어송라이터다. 음악에 관한한 못할 것이 없는 전방위 뮤지션이다. 노래와 작곡, 프로듀스까지 섭렵하고 있다. 실용음악 전공자도 아닌 그가 이처럼 다재다능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음악은 학창시절에 빠져든 특별한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 누이가 사온 통기타에 호기심을 가지고 독학으로 매달리면서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독학으로 노래와 악기 작곡까지 섭렵했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법학과와 실용음악과 사이에서 줄다리기는 하지 않았다. 그가 “공부를 곧잘 해서 고민없이 어린시절 꿈을 향해 법대에 진학했다”며 피식 웃었다.

법대 진학이 법관이라는 꿈을 향한 여정이었다면, 음악은 지독하게 빠져 들었던 취미였다. 처음 기타를 접한 이후부터 공부와 취미의 병행은 일상이 됐다. 대학 재학 중에도 음악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음악동아리 보컬로 활동하며 간간이 무대에 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악은 순수한 열정이 낳은 취미 수준이었고, 전투력을 불사른 쪽은 법학 공부였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면서 취미였던 “노래 부르는 일이 직업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비록 법관의 꿈은 접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주객전도였다”고 회상했다. “노래하는 것이 취미였지만 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시험 낙방과 함께 법관의 꿈을 접고 라이브카페 무대에 서기 시작했죠.”

실용음악 비전공자였지만 실력파 가수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어쩌면 비전공자여서 더 치열하게 실력을 쌓으려 했는지 모른다. 독학으로 기본기가 갖춰지면서 실전 무대 위주로 실력을 쌓아갔다. 다양한 무대 경험을 쌓는 한편, 지역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앨범 발매도 병행했다. 자작곡으로 다수의 싱글디지털 앨범을 발매했고 ‘화우연가’, ‘친구야’, ‘여수의 밤’, ‘봄의 염원’, ‘대구의 추억’, ‘청춘의 단상’, ‘시절’, ‘사랑’, ‘산격동부루스’, ‘향촌야륜행’ 등이 대표곡으로 자리했다.

가수의 길로 접어든지 얼마 되지 않아 상복도 터졌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1 대구 방문의 해 주제곡인 ‘대구의 추억’으로 KBS 대구를 노래하라(2011)에 도전해 대상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봄의 염원)’이라는 곡으로 현대 H 온드림 ‘최고혁신상’(2015) 수상 등이 대표적이다. 굵직한 대회에서 수상자로 선정되자 그의 이름 앞에 실력파 가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자존감도 높아졌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불러주는 무대도 많아졌다.

“30대 초반에 자작곡으로 대상을 타면서 가수로 자신감이 붙었어요. 계속해서 싱어송라이터로 살아도 되겠다 싶었죠.”

활동 초기에는 밴드 보컬로 활동했다. 하지만 대구음악씬에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솔로 활동을 하면서 부터다. 그때부터 노래와 작곡을 병행하는 싱어송라이터라이터로서의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작곡자로 지역에서 대내외적인 이름을 얻은 것은 국악밴드 나릿이 의뢰한 작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관심을 받으면서다. 대구 곳곳의 옛 골목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 거리연극으로 재현한 작품인데 국악과 가요의 조합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를 마이너에서 메이저급 작곡가로 신분상승을 이끈 작품은 따로 있다. 첫 번째 계기는 현대 H 온드림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이며, 두 번째는 영화배우에서 가수로 변신한 오승은의 프로젝트 그룹 오즈가 발매한 앨범 ‘친구’에 그의 곡이 수록되면서다. “밴드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인연으로 오승은 앨범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것이 작곡가로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됐죠.”

다양한 공연 무대 뿐만 아니라 MBC대구포크페스티벌, TBC청춘버스킹, 대구MBC정오의 희망곡, WBS대구 음원방송 ‘아침의 향기’, 대구MBC ‘음악공장’ 등 지역 방송국 프로그램에 이름을 알리며 대구에서 가수의 입지를 굳혀가자 이번에는 외부로 눈을 돌렸다. 그 중에서 큰 성과는 여수에서의 활동이다. 그는 2016년 여수시가 주최한 여수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창작 앨범 ‘여수 낭만의 숨소리(Romantic Breath in Yeosu)’ 앨범에 전국 뮤지션들과 함께 참여했다. 앨범 수록곡인 자작곡 ‘여수의 밤’은 여수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 됐다. 내친김에 밀양에도 족적을 남겼다. 창작뮤지컬 ‘밀양애’의 테마곡 작곡에 참여하면서 활동영역과 장르의 확장을 꾀했다. 현재 그는 대구와 여수, 밀양뿐만 아니라 광주, 충주, 강원도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다. 그가 작곡한 수많은 곡들을 계절로 따지면 가을에 비유될 수 있다. 봄의 강인함과 여름의 생명력이 농익은 결실의 기운으로 모여드는 가을의 향기와 꼭 닮아있다. 그의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도 가을의 기운이 넘실댄다. “한국적인 서정을 가진 음악을 추구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에는 한국인의 감성이 짙게 배어있다. 그가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한국적인 소울이 있는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다. “팝과 재즈, 포크 음악에 국악적인 요소를 가미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서정성을 추구해요.”

한국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김강주에게 한국의 역사나 사회적인 이슈는 좋은 노래 소재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소리극 ‘봄의 염원’은 그의 이러한 개인적 취향의 결과였다. 김강주는 ‘한국적인 소울’이 응축된 역사나 사회문제도 향후 관심을 가지고 음악에 반영하고 싶어 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이론을 뛰어넘는 것이 정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들을 때마다 우리의 맛이 살아나는 질리지 않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빈익빈 부익부는 대중가요 장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돌 가수들의 입지는 세계무대로 확장되고 있지만 실력파 가수들도 생명력이 길지 않은 시대가 됐다. 특히나 지역에서 가수로 길게 버텨내기는 더욱 녹록치 않다. 앨범을 발매하더라도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비용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무대에 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가 “음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김강주가 능동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든 것도 음악인들의 권익을 스스로 보호해 보자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는 ㈜카프스토리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스스로 플랫폼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지역 음악인들이 정당한 몫을 받고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계속해도 치다 보면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 나갈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전부이며 계속해서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살고 싶다”는 김강주. 그가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궁극적인 주제는 ‘사람’이다. “음악의 내용은 결국 사람과 삶의 이야기”라는 것. 그가 “제가 법학 전공자라는 것을 알면 호기심을 가지고 보시는데 사실은 음악과 법학은 모두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일맥상통 한다”고 했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바탕이 되는 음악에서 힘이 생기고 공감대가 나오는 것 아닐까요?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질펀한 음악을 하는 가수로 살아가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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