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국민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이효수 경제칼럼] 국민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 승인 2019.10.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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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투자, 소비, 수출이 동반 감소하고, 성장과 물가가 동반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 경제의 총수요와 총공급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경기 하강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국민경제의 총수요는 기업의 투자수요, 가계의 소비수요, 정부 지출, 해외 수요(수출) 등 4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투자, 소비, 수출이 모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총공급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를 투입해 생산량을 늘려야 증가하게 되는데, 기업이 투자도 고용도 줄이니까 자연스럽게 총공급도 감소하게 된다. 9월 한국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년 전보다 1.9% 떨어지면서 통계 작성 이래 최대 폭 감소했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2018년 5월부터 지난 8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15개월 연속 하락했다. 기업이 수요 감소로 재고 물량이 증가하고 경기 전망도 좋지 않기 때문에 신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기간 경제심리 지수인 순환변동치가 내내 마이너스를 기록한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수출감소세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출도 지난해 12월 이후 10개월 연속 감소세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10월 1일 자 자료에 따르면, 9월 수출액은 447억 달러(약 53조 6,000억 원)로 전년 동월 대비 무려 11.7% 감소했다.

소비자물가가 지난 8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후 9월에도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 하락이 아니라 추세적 하락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1월 0.8%로 하락한 후 지난 9개월 계속 0%대에서 하향 추세를 보이다가 결국 지난 8월부터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지난 8월에는 0%로 발표되었지만, 소수점 두 자리까지 가면 사실 마이너스이었고, 지난 9월에는 마이너스(-) 0.4%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물가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65년 이후 처음이다.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을 우려하는 이유는 이것이 저성장 함정과 맞물리면서 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당초 2.6~2.7%를 제시했다가 2.4~2.5%로 하향 조정했다. 그런데 2.4% 달성마저 어려워 보이고, 심지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경제가 저성장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데, 마이너스 물가로 기업 투자가 감소하면 성장률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동반 하락 추세가 나타나면서 디플레 우려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는 디플레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은 상품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 생산자의 수익은 감소하게 되므로, 생산자는 자연히 투자를 감소하게 된다. 투자가 감소되면 고용이 감소하고 실업이 증가하면서 가계의 소득이 줄어들어 소비는 더 감소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물가가 하락 추세에 있으면, 사람들은 앞으로 더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소비를 미루게 되면서 소비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또다시 투자와 고용을 줄이게 된다. 이런 하강 악순환이 반복되면, 적자 기업, 부도기업이 증가하면서 연쇄 도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이처럼 기업 연쇄 도산, 실업 증가, 소득 감소 등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위험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 안정 상황(2019년 9월)’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한국 기업 전체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고,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분기 80.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포인트 높아졌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기 어려운 한계기업의 비중도 2018년 기준 전년대비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10.6%, 중소기업의 14.9%가 한계기업이다.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기존의 한계기업은 도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한계기업이 증가할 것이다.

정부의 경제 진단과 처방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정부 정책 실패로 사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현재 저성장 함정도, 디플레 진입 국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제 체질은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고, 경제는 폐렴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정부는 이것을 단순히 지나가는 감기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은 경제가 성공적으로 잘 가고 있다고 하고,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풀어, 질 낮은 시급 일자리를 양산하면서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가 다소 침체해도 재정확대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규모 적자 재정을 편성하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국민경제의 총수요는 기업 투자수요, 가계 소비수요, 해외 수요(수출), 및 정부 재정지출이다. 문제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투자, 소비, 수출 등 민간 수요 감소를 대체할 수 있고, 민간의 투자 및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재정정책 효과는 경기의 일시적 후퇴기에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경제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저 성상 함정에 빠져들고 있어 이런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경제는 침체하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세수를 증가시키면, 기업 투자 및 가계 소비는 더욱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세금의 원천 즉 세원이 줄어들면서 세수도 감소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유리한 통계를 이용하여 정책 실패를 성공으로 호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막대한 재정지출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면서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는 식의 접근을 하면 안 된다. 정부는 현실 경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소모형 재정지출에 의한 대증요법적 처방이 아니라, 경제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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