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국내 사과의 ‘원조’ 대구…120년 명맥 이어갈 방안은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국내 사과의 ‘원조’ 대구…120년 명맥 이어갈 방안은
  • 임종택
  • 승인 2019.10.0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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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선교사가 들여온 사과나무
옛 동산병원 사택에 재배…1개 종만 남아
작년 고사 판정…현재 후세목 3그루 관리
미주리 州서 가져온 나무로 품종 불명확
유전적 검증 통해 뿌리 명확히 파악해야
다시-3세목전경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가 심어진 대구 중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구 의료선교사 사택에는 지금 3세목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3세목-사과열매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가 심어진 대구 중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구 의료선교사 사택에는 지금 3세목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11) 대구 사과 ‘영광의 스토리’

‘대구’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2·28국채보상공원, 달성공원, 분지, 더위와 추위, 팔공산 갓바위...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인 따로국밥·동인동찜갈비·납작만두, 사과...

그것은 의식주와 관련한 삶의 수레바퀴가 만들어낸 따뜻하면서도 때로는 치열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수레바퀴가 둥글듯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한시도 머물지 않고 시간이라는 물길 속으로 흘러간다. 그것은 글로 기록되거나 아니면 구전(口傳)으로 전해지거나 둘 중의 하나다. 어느 것이든 반드시 기록하고 역사로 남겨야 할 것이 있기 마련이다.

국난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평민들의 의로운 삶이나 먹을 양식이 부족하여 굶주림에 허덕였던 백성의 배를 불려 주었던 음식이나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은 세세히 기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 혹은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상징물 중 대구의 이미지에 커다란 몫을 하였던 사과(沙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대구에 처음으로 사과(Malus pumila var.dulcissima KOIDZ)가 전해진 지는 올해가 120년 되는 해이다.

1899년 미국의 선교사(닥터 존슨)에 의해 전해져 제중원(지금의 동산병원)을 설립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가져온 ‘스미스사이드’, ‘레드베아민’, ‘미조리’ 세 품종을 병원 사택을 지으면서 뒷마당에 심었다고 한다. 그 중 한 나무가 살아남아 2세목으로 지정되었고, 여러번의 사료(史料) 해석의 오류 끝에 미조리주(미주리주)에서 존슨 박사가 가져온 나무가 최초의 나무라는 것으로 대략 정리된 듯하다.

그래서 2000년 10월에 역사성과 상징성을 감안하여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하게 된다. 하지만 미조리는 품종이라기 보다는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라서 나무의 품종을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과나무 100년’이라는 안내 표시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학명 : Malus domestica BORKH, 여기에 뿌리내린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이다. 초대 병원장인 존슨박사(한국명 장인차)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이다』라고 되어있다.

2017년 당시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는 나무의 생육상태가 매우 위중하였다. 나무의 밑둥부터 썩어 있었고 병해충의 침입 흔적도 많았다. 철지주목에 기대어 겨우 목숨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2018년도에 나무는 고사 판정을 받고 보호수 지정도 해제되었다. 해제된 보호수 밑둥은 기념으로 남겨두었는데 보호막이라도 해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후세목인 3세목 3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의 열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사과열매의 모습이 아니라 꽃사과의 열매가 달려 있다. 꽃사과(Malus prunifolia (Willd.) Bokth)는 산속에서 가끔씩 자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물론 열매도 작은 것이 보통이다. 즉 사료(史料)인 ‘대구부사’, ‘대구시사’, ‘대구능금 100년사’, ‘중악집’ 등의 내용을 종합하여 추정한 결과가 사과 열매의 모습이 작은 것은 당시 미조리주로부터 일반 사과를 실생번식(씨앗을 틔워서 번식한 것)한 묘목을 들여와 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씨앗으로 번식한 나무의 열매는 대체로 작은 것이 보통이나 이 사과나무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바탕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좀 더 이 사과나무의 이력을 정확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서양 사과나무의 품종에 대한 언급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서 대구사과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존슨 사과나무의 품종이 무엇인지 우선 명확한 유전적 검증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대구 사과의 영욕이 엇갈리는 가운데 재배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서 청송, 울진, 충청도, 강원도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원류는 분명히 대구란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재배지가 바뀐 것이 주요 원인이겠지만 그냥 날씨와 환경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대구 사과의 영광을 토대로 한국의 사과는 눈부시게 품종 개량과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역사성을 보존하는 사과역사박물관 건립, 사과박람회 등 대구는 물론 전 지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과 관련 콘텐츠를 개발 보급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 후 존슨 박사의 대구에 서양 사과나무 도입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사과가 도입되어 전국적으로 심어지기 시작하지만 상업화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식재 토질이 사질 토양인 점이나 재배 환경적 특성이 대구 금호강 낙동강변의 모래땅이 최적이라는 것을 파악한 일본인에 의해 일제 강점기로부터 본격적으로 심어져 대량의 상업화에 이른다.

 

다시-사과고목
대구 동구 평광동사과단지 내 사과나무 고목의 모습. 평광동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과나무보호수인 홍옥사과 나무가 있다.

평광동 사과단지
올해 89년 된 국내 최고 수령 홍옥사과
잦은 관람객 방문에 집주인 “접근 사양”
나무 이식하거나 새 접근로 확보 필요
관광단지 조성·역사박물관 건립 추진을

사과(沙果)는 한자어 뜻 그대로 모래땅에 잘 사는 나무다. 그 중 1935년도 당시 상업화에 적합했던 사과 품종인 ‘홍옥’을 현재까지 대구 사과의 명맥을 지키고 있는 동구 평광동 일대 제바우 농원 우희광씨의 선친 우채정씨 집앞에 심었는데 한 나무가 남아 2009년 5월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얼마전 이 보호수를 탐방하기 위해 평광동으로 향했다. 동구 도동 천연기념물 1호인 측백수림과 측백수림 맞은편에 수령 160년 회화나무 보호수(2-12호)앞 불로천을 따라 팔공산 자락인 용암산과 운암산 계곡 사이를 지나가니 시가지와 산촌이 분리되는 듯한 계곡지형으로 도시의 열기를 차단하고 팔공산 자락의 시원한 바람을 가두어 사과 열매를 잘 영글게 하는 지형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평광동 마을 입구에는 ‘대구평광 사과단지’라고 써 있는 커다란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 바로 앞에는 또 다른 대구시 보호수(2-10호)인 수령 150년생 왕버들나무가 마지막 남은 사과의 고장을 지켜주는 장승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도심으로부터는 용암산이 가로막고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은 사과나무를 재배하기 안성맞춤이다.

사과나무 보호수가 있는 맞은편에는 대구시 문화재자료 13호인 우(禹)씨 재실인 첨백당이 있고 첨백당 내에는 보호수인 수령 120년 광복소나무(2-21호)와 수령 320년 은행나무 2그루가 잘 보존되어 있다. 그 맞은편 사유지인 개인 집 안 한쪽에 사과나무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과나무는 안내판에 쓰인 그대로 수령 89년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사과’ 나무다.

그날은 집주인과 여러차례 협상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접근 허락을 받지못해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빈번히 찾아오는 관람객으로 인해 매우 단호하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주인은 안으로 사라져 아쉬움이 컸다. 관련 기관에서는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보호수 지정은 되어있고 보고 느낄수 없다면 보호수를 지주와 협의해서 이식을 한다거나 새로운 접근로의 확보 등 대구사과가 가지고 있던 명예회복을 위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평광동은 140여 가구가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도동 측백나무 숲과 느티나무 보호수, 그리고 소나무 은행나무 보호수가 공존하는 이곳을 대구에 남은 마지막 영광의 열매인 사과홍보 관광단지 조성과 인근의 수십년 된 고목 사과재배 단지를 보존하는 특별품종보존지역으로 지정하고 보호수와 천연기념물 그리고 마을 전체를 연계한 광역 테마관광단지화 한다면 앞에서도 언급한 사과역사박물관, 그리고 사과박람회등 다양한 콘텐츠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능금아가씨 선발대회’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데 있다는 토인비의 말이 떠오른다. 사과의 역사도 대구의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임종택 (나무치료사·대구한의대 환경조경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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