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구청사, 14일부터 신경미展
정부대구청사, 14일부터 신경미展
  • 황인옥
  • 승인 2019.10.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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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 된 물고기 여인 연작
100호부터 300호까지 대작 준비
질감·무게감·깊이감 특히 강조
신경미-봉황-연작
신경미 ‘봉황’ 연작.

작가 신경미가 전시를 목전에 두고 부담감에 잠 못 든다고 했을 때 의외였다.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시원시원한 말투의 거침없는 그녀에게 전시 준비가 부담이라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가 “330㎡(100평)에 가까운 대형 전시장에 300호에서 100호까지의 대작들을 펼쳐놓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고 하자 수긍이 갔다. “이렇게 큰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갖는 것이 처음이고, 대작 위주로 저의 이야기를 펼쳐놓아야 하는 것도 부담이에요. 저는 전력질주를 하고 나머지는 관람객의 몫인 것 같아요.”

모든 예술가는 자신을 예술의 출발선에 놓는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세계 나아가 우주로 예술적 지평을 확장해 간다. 작가 신경미는 하나의 불꽃도 남기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연소해 예술로 승화하는 부류다. 무엇이 그토록 자신에게 매달리게 이끌었을까? “아이들 키우고 집안일 건사하며 작업을 해 나간다는 것이 힘에 부쳤어요. 자유로움 속에서 예술을 펼쳐야야 하는데 저를 옭아매는 상황들이 많았어요.” 세계나 우주 이전에 작가 자신의 고뇌부터 해결해야 했던 것.

작품이 팔리지 않으니 물감과 캔버스 구입도 부담이었고, 작품할 시간도 쉬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부와 작가 모두 포기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힘에 부쳤다. 그 상황에서 그림을 계속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팔공산에 작업실을 꾸리고 스스로를 유배시키는가 하면 6년간 삭발 투혼을 감행하기도 했다.

“힘든 상황에서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제 의지를 확고하게 다졌어요.”

작가의 모든 그림은 자화상이다. 때로는 여인이, 때로는 봉황이, 또 때로는 물고기가 그녀의 자화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불과 2년전 까지만 해도 그림에 어두움과 고독감이 가득했다. 통풍이 되지 않는 지하 작업실이라는 공간적인 제약, 집안일과 작업을 병행하는데서 오는 한계, 작가로써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 등의 감정들이 그림 속 어두운 에너지로 표현됐다.

어두운 기운이 사라진 것은 2년 전.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2년전, 대구 칠곡의 볕 잘 드는 전원 2층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후 작업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작품이 조금씩 팔리기 시작한 것도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무엇보다 든든한 후원자의 존재는 안정감을 안겼다. 사실 작가의 먼 친척이 진작부터 후원 의사를 밝혀왔지만 자존심 강한 신 작가가 매번 거절해오다 작업실을 옮기면서 호의를 받아들인 것. 그런데 신기했다. 상황이 좋아지니 작품이 밝아지고 긍정의 기운이 넘실댔다.

“지금은 캔버스와 물감 살 돈 걱정 없고, 어두운 작업실에서도 벗어나 그 어느 때보다 행복감에 겨워 작업하고 있어요.”

여성이 6년이나 머리카락을 밀어야 할 만큼 간절했던 작업열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작가가 오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녀가 작가의 꿈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천경자 화백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웃 마을에 천경자 화백이 사셨어요. 그 분을 보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어요.” 작가는 어린시절 종이조차 변변하게 없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 편이었다. “천경자 화백이 화가의 꿈을 키우게 했다면 어머니는 저를 마음으로부터 지원해주신 든든한 지원자셨어요. 그분들이 화업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셨던 거죠.”

국내 전시는 소원했지만 해외 전시는 더러 했다.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미술관 개인전 이후 중국 상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내 아트 전시에 참여하고, 독일 드레스덴 초대전에서 초대전 등을 열었다.  2014년 독일 드레스덴 초대전에서 당시 한복 입고 ‘아리랑을 울려라’라는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작품 ‘물고기 여인’과 ‘봉황’ 20년 이상 계속된 연작이다. 최근에는 ‘봉황’ 연작에 집중하고 있다. 봉황은 신화 속 상상의 새로, 용과 학이 교미해 태어난 상서러운 새다. 그런 만큼 찬란하게 비상하는 화려한 ‘봉황’을 그리고 있다. 다만 표현법은 좀 달리하고 있다. 상상 속 봉황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그린 이전 작품과 달리 질감과 무게감, 그리고 깊이감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3m 작품은 33마리 봉황을 바탕에 깔고 독보적으로 비상하는 한 마리를 그린 후 유영하는 듯한 물고기 77마리를 그렸다.

“너무 빨리 가려 하기보다 소걸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꾸준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가족들 건강하고 제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더 큰 바람은 그야말로 욕심인 것 같아요.”

신경미의 ‘봉황날다’전은 14일부터 31일까지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에서(대구 달서구 화암로 301)에서, 개막식은17일 오후 5시에.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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