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력
마찰력
  • 승인 2019.10.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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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지인 중에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아래인 사업가 한 분이 있다. 며칠 전에 그 분과 얘기하다가 중학생 딸아이의 과학시험 공부를 도와주다가 깨닫게 된 교훈을 들었다. 그것은 ‘세상은 물체가 접촉하면서 생기는 서로를 거스르는 힘인 마찰력 때문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이 땅 위에 서고 걸어가는 것도 지면과의 마찰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는다. 글씨를 쓸 때 펜과 종이와의 마찰이 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길 수 있고, 지우개와 종이의 마찰이 있기 때문에 잘못 쓴 글을 고칠 수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도르래도 마찰의 원리이고,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 역시 활로 줄을 마찰시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모든 곳에 마찰의 힘이 미치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매일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부딪힘 속에 생기는 마찰로 인해 참 많이도 아프고 힘이 들어 마찰이 없는 곳으로 피하고 싶었단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살아가면서 마찰이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이 기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소년 같은 전혀 사업가 같지 않은 그의 외모와 성품 때문에 은근히 그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야기와 기도를 듣고 난 후, 그가 더욱 좋아졌다.

‘이 사건이, 이 사람이 나를 나 되게 세워주는 신발과 지면이고 내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도르래이며, 내 삶을 향기롭고 아름답게 연주해 줄 악기임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우리나라에 연일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촛불과 태극기가 일으키는 마찰음에 지치고 피곤하며 때로 분노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 마찰음은 교회와 가정까지 흔들고 있어서 우리 사회가 어찌될까 걱정도 된다. 최근 정국의 상황은 자금까지 한 번도 정치적 견해로 다툼이 없었던 우리 부부에게 마찰을 자주 일어나게 하고 있다. TV를 보며 흥분한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아내의 모습이 낯설어 얼굴을 마주하기가 은근히 싫어지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듣게 된 그의 이야기는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마찰력, 물체가 접촉하면서 생기는 서로를 거스르는 힘. 아, 마찰음은 마찰이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의 소리였구나.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들려오는 마찰음은 우리 사회가 무너지는 굉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마찰력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존재의 외침일 수 있겠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거스르고,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를 거스르며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병원에 들렀더니 혈압을 재던 의사가 말을 건넨다. 지난달도 혈압이 높게 나왔는데 오늘도 좀 높게 나오는데요. 예, 두 달 전부터 혈압이 좀 높아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정국 때문에 열을 받아서 그래요’라는 말을 덧붙이려다 그러지 못하고 입 안에서 삼켰다.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을 정국 핑계를 대다니 스스로 부끄러워 말을 삼킨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어리석은 핑계를 계속 고집한다. 비교적 정규적인 나의 삶인데 왜 하필 두 달 전부터 혈압이 오른단 말인가? 검찰과 언론이 이래서야 되나? 또 우리나라의 적화를 염려하는 목사님들이 심심치 않게 문자를 보내온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키시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글을 보내려다 지워 버리고 만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인들도 모일 때마다 조국 사퇴의 필연성을 주장한다. 다소 진보적 성향의 나는 그들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지 않고 반론을 편다. 그러면서 조금씩 흥분되어 혈압이 설설 오르는 것이 틀림없다고 혼자서 속단한다.

어저께 좋은 혈압 약을 처방받았다. 병원에서가 아니라 카페에서, 의사에게서가 아니라 지인인 사업가에게서 마찰력이라는 좋은 혈압 약을 처방받았다. 세상은 물체가 접촉하면서 생기는 서로를 거스르는 힘인 마찰력 때문에 돌아간다. 그의 처방전이다. 너와 나,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거스르는 마찰력 때문에 세상은 돌아간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머리가 개운하다. 불안해하지 않으리라. 마찰음을 내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그렇게 굴러갈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마찰음이 나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아마 나의 혈압도 곧 안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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