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맞나?
가족 맞나?
  • 승인 2019.10.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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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퇴근시간 30분 전 남편이 전화를 했다. 퇴근할 때 데리러 갈까 라는 내용이었다. 퇴근 시간을 맞춰 사무실 앞으로 오기로 했다. 남들이 보면 참 자상한 남편 같을 것이다. 아내 직장 가까이에 볼 일이 있었고,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같이 가려고 약속하고 기다리는 남편이 부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홍희는 남편의 방문이 달갑지만은 않다. 홍희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1시간동안은 오롯이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며 걷는 것이 좋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저녁 반찬거리를 살 계획이었다고 말하니 방향을 바꿨다. 열심히 일한 결과로 받은 전통시장 상품권으로 고기를 샀다.

집으로 가는 길은 가다가 서다를 반복했고 앞에 흰색승용차가 있었다. 남편은 그 차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차라며 주차할 곳을 뺏겼다고 했다.

정말 그 차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차인지 확실치는 않고 늘 아파트 주차장은 빈 공간이 있었다. 물론 남편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뺏기고, 따돌림 당하고, 이용당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남편의 피해의식 같은 게 싫었다. 남편은 홍희의 마음을 늘 모른다. 저 사람이 뺏은 게 아니라 그냥 먼저 가는 것 뿐이라고 하니 “가족이 맞나? 내 편을 들어줘야지. 왜 내 편을 안 들어주노?”라며 화를 냈다.

가족? 남편이 생각하는 가족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자기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자기가 힘들 때 위로해주고, 자기편이 되어주고 격려해주고 그런 가족일 것이다. 홍희도 그런 가족을 원한다. 홍희의 마음을 알아주고, 홍희의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홍희가 힘들 때 위로해주고, 홍희의 편이 되어주고 격려해주는 가족 말이다. 홍희에게도 그런 가족은 없다. 그래서 가끔은 힘들다.

홍희에게 가족은 두 가족이 있다. 결혼 전에 형성된 원가족, 결혼 후 만들어진 지금의 가족이다. 한 남자와 결혼으로 가정이 이루고 아이를 낳았기에 아내와 엄마로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현재의 핵가족에 충실하고자 했다. 남편은 성인이었으나 동등한 인간관계에서 서로 상부상조하기보다는 아내 위에 군림하려 하였다. 아이들은 엄마의 보살핌이 절대적이었다. 아내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가족을 유지하려 했다. 아이들이 어렸고 엄마뿐이 아니라 아빠의 보호와 사랑도 필요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 필수적이어서 경제력이 없는 홍희로서는 남편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경제력이 생기고 아이들이 컸을 때는 가족을 해체할 큰 요소는 없었다. 그래서 가족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원가족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지금의 가족에는 책임과 의무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홍희는 남편이 생각하는 그런 가족이 없다.

화내는 남편을 달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맛있게 구워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다. 주로 남편이 얘기를 하고 홍희가 듣는다. 남편의 형제들 이야기이다. 같은 상황, 비슷한 이야기, 짧은 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 해결할 방법도 딱히 없다. 시간이 흘러 서로의 생각이 달라지고 서로 대화를 통해 속마음을 터놓고 한 발짝씩 양보해야 한다. 또 최대한 형제간의 우애를 해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진전이 없는 남편의 형제들 얘기를 시도 때도 없이 들어서 그만 듣고 싶다. 남편은 홍희가 원가족 얘기를 하면 듣기 싫어한다. ‘우리 가족’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원가족 얘기를 30분 듣고 그만 듣고 싶어 하니 자기 얘기를 더 하고 싶은지 아쉬워한다.

홍희는 남편에게 묻고 싶다. “당신 내 가족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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