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현석,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드로잉이라고?
[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현석,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드로잉이라고?
  • 서영옥
  • 승인 2019.10.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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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위에 철사나 노끈 부착
조명에 의해 생긴 그림자 여럿
자세히 보니 직접 그려넣은 선
관람객에 강한 착시현상 유도
현실과 허상 경계에 질문 던져
11월 17일까지 시안미술관 전시
김현석 작 무제
김현석 작 무제.
 
김현석작-무제1
김현석 작 무제.

애초에 미술은 삶의 도구이거나 삶의 풍요에 일조했다. 선사시대 인간은 동굴에다 벽화를 그렸다.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에 새긴 영원에 대한 갈구와 중세 성당의 이콘화를 포함한 모든 미술은 당시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삶의 흔적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 하였음을 방증한다. 작가 김현석은 이러한 미술이 “실존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미술작품은 대상을 표상(表象, representation)한다. 재현과 같은 맥락의 표상은 주로 경험이나 사유, 기억 등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나타낸다. 아시다시피 이미지는 실재가 아니라 허구다. 혹자는 화면에서 실재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 자유는 표현에 길들여진 관습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재현 가능한 물리적인 대상을 제거했다고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 김현석의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 담백하고 간결한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가 제목을 ‘무제’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지적 공백상태에서는 감상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제목으로 작품의 내용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 제목은 작품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를 지시한다. 의미 전달의 가교역할도 한다. 그러나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의미 있는 언어표지를 붙이지 않으려 했다. 언어표지는 우리 사고의 범위를 한정하거나 그 대상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할 것인 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작가 김현석도 이점을 염두 한 듯하다. 작가는 시종일간 작품의 제목을 ‘무제’로 달고 의미를 한정하지 않는다. 관람자들을 편향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도 읽혀진다. 글머리에서 언급하였듯이 김현석 작가의 관심사는 ‘실존(實存)’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야스퍼스나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에 기대기보다 작가의 사유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철학하는 작품은 생각이 무디어지면 볼 수 없다. 미술작품에서 작가의 정신을 본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김현석 작가의 작품도 이 부류에 속한다. 사유로 점철된 작품 감상은 곧 그의 사유와 대면하는 일일 것이다. ‘세상은 유동적이며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고 처음과 끝이 서로 맞물려 윤회한다. 에셔(Maurits Conelis Escher 1989~1972)의 작품에서와 같이 가상과 실제가 혼재하고,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작품에서처럼 앞과 뒤가 불분명하다. 주제와 배경은 늘 동일선상에 존재한다.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 또는 시각과 개념 사이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는 김현식 작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사유의 근간이다.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김현석 작가는 그림자(shadow)를 통해 또 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확장해 펼쳐낸다. 평면작업에서 그림자는 이차원의 평면과 대비되는 삼차원의 입체를 시사한다. 예술작품 감상에서 그림자가 장면해석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림자가 도출한 착시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어떤 대상물이 삼차원임을 입증해주는 단서로써 가치를 발휘하며 음(陰)과 양(陽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한 곳에서 인식하게 한다. 정상적인 눈이라면 볼록하게 튀어나온 입체와 그것이 입체임을 증명해주는 그림자를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빛은 대부분 위에서 비춰지고 그림자는 그 아래쪽에 형성된다. 김현석은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관계에 주목하고 ‘실체와 배경의 상관관계’를 작업에 적극 끌어들인다. 그의 작업노트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나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현실이 실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념의 익숙함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들은 그림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 숨겨져 있는 것을 보는 우리의 관습에 대한 나의 고발이다. (중략) 나타난 현상과 숨겨진 배경에 이르기까지 내 눈을 간섭하는 세계의 모든 관계들을 따지고 아우르는 작업을 나는 시도하고 있다.”(김현석의 작업노트)

아무리 많은 뉴론들이 작동한다 하더라도 존재하는 모든 장면과 소리를 우리 뇌에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각도 마찬가지다. 사실 시각 대상의 물리적 맥락은 지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대상은 본질과 그것이 놓여있는 맥락에 따라서 실제와는 거리를 둔다. 실재보다 크거나 작고 더 밝거나 어둡다. 또는 더 명확하거나 흐릿하게 보일 수 있다. 이와 같이 미술과 인지는 서로를 반영하고 확대시키는 두 개의 볼록거울로 존재한다. 시각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인간 두뇌의 또 다른 특징은 정보를 범주, 원형(archetype) 그리고 스키마(schema)로 체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원형은 유사한 패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매우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한다.

작가 김현석은 위와 같은 지식을 배경으로 기억과 판단, 경험과 관습의 진실반영 정도를 질문한다. 작가는 먼저 촉각적인 사물을 전면에 부착한다. 이를테면 철사나 노끈 같은 것이다. 그 위에 빛을 비추면 화면 바닥에는 얇은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조명등은 하나인데 여러 개의 그림자가 생긴 것으로 보아 어떤 장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 한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나만 물체에서 떨어진 그림자이고 나머지 그림자는 작가가 임의로 그려놓은 드로잉선이다. 드로잉선이 세밀하진 않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보면 실제의 그림자로 착각할 정도다. 실제 광원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가 아니고 그림자를 그린 그림 그 자체는 일종의 드롱프뢰유 기법이며 착시현상이다. 결국 그린 그림자들은 실제 광원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를 간섭하여 빛과 배경의 혼란을 야기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현실과 허상을 되묻는다.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은 하나의 씨앗과 같다. 전시회는 그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고 열매 맺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씨앗 안에 내재한 생명력이다. 생명력을 품은 작업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작품의 메시지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뿌려진 씨앗이 자라서 열매 맺으면 수확은 거두는 자의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김현석의 작업은 일종의 깨달음에 근접해 있다. 설명될 수 없는 깨달음은 치열한 지혜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끈과 같은 것이다. 생물학적인 원형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며 모든 인간 본성에 흐르는 그 무엇이다. 심오한 정서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인지수준 같은 것인 깨달음은 그저 열린 눈으로 보고 열린 마음으로 포용할 때 가슴에 와 닿을 뿐 구체적인 언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는 누구나 한번쯤 읊어봤던 시일 것이다. 김현석 작가는 작품으로 ‘자세히 보지 않아도 이미 너는 예쁘고 본래부터 사랑스러웠다’고 하는 것 같다. 바로 그가 작업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영천 시안미술관 특별기획전 ‘SINCE THEN(그 이후 전, 9월 5일~11월 17일)’에 참여 중인 김현석은 40년간 붓을 놓지 않고 꾸준히 화업을 이어온 작가이다. 조용하면서도 이유 있는 김현석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인물1
 
※ 김현석= 갤러리댓(1989대구) 인공갤러리(1995대구), 봉산문화회관(2009대구), B스페이스(2018대구) 등에서 개인전 4회 개최 단체전은 1984년 젊은세대전 (수화랑,대구)을 비롯해 1985년부터 2016년 봉산문화회관 기획전 ‘또 다른 가능성으로부터’와 2017년 ‘대구미술생태보감’(예술발전소,대구) 전주소리축제-미디어+현대미술(전주)등 수차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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