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遙遠)한 북한의 비핵화
요원(遙遠)한 북한의 비핵화
  • 승인 2019.10.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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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 행정학 박사·객원논설위원
스톡홀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그 이유는 서로 기존의 입장을 변화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변화된 자세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면 왜 미국과 북한은 기존의 입장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협상장에 마주 앉았을까? 아마 자국의 정치적 이해 때문일 것이다. 국제사회에 자신들은 대화에 성실히 임했지만, 상대방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명분 쌓기라는 것이다.

먼저 협상 결렬 직후 북측 대표는 미국이 전혀 새로운 것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핵실험 중지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중지, 그리고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등 비핵화와 관련한 일련의 조치에 대해 미국의 성의 있는 화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자신들이 취한 일련의 조치에 걸맞게 자신들에 대한 제재를 완화 또는 해제하는 등 조치가 있어야 그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를 논의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게 돌리고 12월까지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보겠다는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측의 발표가 8시간 반에 이르는 협상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4개 합의 내용을 발전시키기 위한 창의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새로운 접근을 설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실무회담에서 북한이 강경하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에 있는 미국의 대선과정에서 북한의 전략 도발을 두려워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재선에 몰두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외교 치적으로 주장해 온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 중지’의 재개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경고한 것이 그 근거이다. 따라서 미국에 연말까지라는 시한을 주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하겠다는 등 위협을 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를 몰아붙이면 핵 폐기가 아닌 동결하는 수준에서 그들에 대한 제재 해제와 맞바꿀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 예로 지난 10월 2일 동해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 3호 실험을 들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에 해당하는 SLBM 발사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침묵을 유지했고,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번 실무회담에서 강경노선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준 것이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부터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각하는 비핵화는 북한에서의 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고, 북한에서 생각하는 비핵화는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포함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각 단계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대가로 대북 제재 일부 완화, 종전선언 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이 행한 조치에 대한 보상으로 완전한 제재 해제, 체제 보장 조치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할진데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가 있겠는가?

지난 30년 동안 핵과 관련한 북한의 협상 태도는 시간 벌기로 일관해 왔다. 지속적으로 핵 개발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여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하게 만들고, 그것이 들통나 제재가 강화되면 이를 핑계로 다시 동결을 풀고 핵물질을 생산해 왔고, 국제사회는 다시 이를 동결시키기 위해 제재를 완화해 주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북한이 진정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핵시설 신고·검증·폐기의 로드맵 작성을 기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북한 태도는 완전한 핵 포기를 전제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밀고 당기는 전략으로도 보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절대 핵 보유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핵이 없는 북한이 지금처럼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서의 협상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를 생각해보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만에 하나라도 미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북한의 핵 동결을 전제로 비핵화 협상에 동의하게 되면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머리위에 핵을 지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철수한 전술 핵을 재배치하는 등 명백한 현실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안보전략을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태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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