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바탕 진취적 서풍…현대성만 좇는 후학에 본보기
정통 바탕 진취적 서풍…현대성만 좇는 후학에 본보기
  • 김영태
  • 승인 2019.10.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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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맞아 세번째 개인전 개최
병풍·횡액·종액·방액 등 47점
외유내강·정제중후 필체 입증
평생 노력 깃든 법고창신 자체
소헌선생고희때작품
소헌선생 고희(古稀)때의 작품 「千字文草書(천자문초서)」, 122.0x292.0cm, 1977(丁巳)
 
소헌선생-고희서법전
소헌선생의 고희서법전(古稀書法展) 전시장에서 작품을 둘러 보는 내빈들. 앞 좌측에서 소헌 선생, 서석규 경북예총회장, 서예가 긍농 임기순, 신태식 계명대 총장. 1977

 

[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 (28)-노년기(老年期)2. 1977(70세)

소헌 선생의 나이 70세. 선생은 이 때를 스스로를 노년기로 인식했던 것 같다. 인생무상이라는 노년의 고독감이 찾아왔다. 지난 세월을 돌이켰을 때 세월은 정말 흐르는 물과 같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은 소슬(蕭瑟)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도 고희(古稀)가 되었으니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성화들이었다. 선생의 고희를 기념하는 전시회를 해야 한다는 제안(提案)이 제자들 사이에 나돌았다. 선생은 한동안 망설였으나 한편으로 고희를 맞으면서 그 간의 작업을 정리해 볼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주귀향전(尙州歸鄕展) 때 얻은 기억이 되살아 나기도 해 용기를 내었다.

◇소헌(素軒)김만호(金萬湖) 고희서법전(古稀書法展)

봉강연서회(鳳岡硏書會) 문하생들의 주선과 친지들의 성원에 힘입어 1977년 가을에 선생의 고희서법전(古稀書法展)이 열리게 되었다. 생애 세번째의 개인전이었다.

봉강연서회(회장 박선정)에서는 초대인사로 “소헌 김만호 선생은 전 생애(生涯)를 통하여 서법심원(書法深源)에 전심하셨으며 왕년(往年)에 불행히도 고혈압의 지병이 있었으나 불굴(不屈)의 집념으로 이를 극복, 정통적(正統的) 서법과 유가적(儒家的) 품위를 강호(江湖)에 널리 부각(浮刻)시킨 영남서도(嶺南書道)의 중진입니다. 금반 고희전(古稀展)을 맞이하여 기간(其間) 혜안(慧眼)을 집대(集大)한 작품 약간을 공개하게 되니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되는 바입니다. 이에 서예 동호제위의 고견(高見)으로 필법정도(筆法正道)의 정립장(定立場)이 되기를 바라며 왕하지영(枉賀之榮)을 앙축(仰祝)합니다”라는 박선정 봉강연서회장의 인사말로 각계인사(各界人士)들을 초청하였다.

전시회는 9월 13일 개막했고 19일까지 7일간 대구시립도서관 전시장에서 계속됐다. 이 고희전에는 12곡병인 「태극도설(太極圖說)」, 10곡병인 「소서(素書)」, 「고시(古詩)」, 「적벽부(赤壁賦)」 등 병풍 9점과 횡액 24점, 종액 11점, 방액 3점 등 47점을 출품하였다.

소헌 선생은 “부족한 이 사람이 이룬 것 없이 어언 70을 맞고보니 스스로 소슬(蕭瑟)한 심정을 누를 길 없습니다. 이번에 동도제형(同途諸兄)의 후의(厚意)와 여러 이웃들의 따뜻한 권유(勸誘)를 져버릴 수 없어 여기 조그마한 작품전을 가지게 되었사오니 청람(淸覽)의 영광을 베풀어 주시면 만행(萬幸)이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하였다.

전시장에서 서예동호인과 지인, 문하생들의 축하 화분에 둘러 싸여 소헌 선생은 깊은 감회 속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서도(書道)는 나의 종교(宗敎)다. 이 길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숱한 고난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었을 것인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하는 일 중에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축적하는 일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 나의 서도(書道)는 나의 신앙이며 나의 종교이다”. 선생은 지나온 70 평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나름대로 결실(結實)된 잔잔한 보람이 그러나 뜻 깊은 보람이 저 깊은 영혼으로부터 솟아 흘러나왔다.

전시회의 반응은 굉장했다. 참 인격을 바탕으로 신운(神韻)이 살아 움직이는 완성(完成)에의 집념으로 쓴 작품들이었기에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고희전을 보고 서예가 심재완(영남대교수)박사가 매일신문에 전시평을 기고했고 서예가 왕철(旺哲) 이동규(李東圭·서예가)선생은 영남일보에 서예전 논평을 했다.

다음은 모산 심재완 교수의 전시회 서평(書評)이다.

「강유(剛柔) 겸한 원숙자재(圓熟自在)의 경지. 소헌 김만호 고희서법전을 보고-

… 소헌의 해서(楷書)는 진(晉)의 왕우군(王右軍)체와 당(唐)의 구양순(歐陽詢)체, 안진경(顔眞卿)체 등에서 득력(得力)하여 서풍(書風)을 익혔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정제중후(整齊重厚)한 필체는 그의 서력(書歷)을 보여주며 만년에 주력하고 있는 듯한 진·당(晉·唐)의 왕우군(王右軍), 안노공(顔魯公), 손과정(孫過庭) 등에서 우러난 작품으로 ‘소서(素書)’, ‘도리원서(桃李園序)’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전 작품엔 일관된 진실 겸허 속에서도 자기확립의 자취가 역연(歷然)함을 볼 수 있다. 투병(鬪病) 속에서도 끊임없는 적공(積功)으로 도달한 원숙(圓熟) 자재(自在)의 경지에 들어선 그는 강유(剛柔)를 겸한 품성마저 붓끝마다 풍기고 글씨가 바로 그 사람임을 입증(立證)해 주는 듯 하다. 그가 학불염(學不厭) 교불권(敎不倦)하여 추앙받고 있음은 서(書)가 한갓 기예(技藝)만이 아님을 보여 준다. 소헌서전(素軒書展)은 이러한 생활의 표현인데 더욱 그 의의(意義)는 크다 하겠다. 심재완(沈載完)<서예가·영남대교수>」 (매일신문, 1977.9.16.)

또한 왕철(旺哲) 이동규(李東圭)선생은 아래와 같이 논평했다.

「정통(正統)위에 꽃핀 ‘자체(自體)’, 내강(內剛)의 필체(筆體), 원숙(圓熟)한 경지-

서도(書道)에 입문하면 흔히 비인부전(非人不傳)이나 심정필정(心正筆正)이라는 말을 듣는다. 서(書)는 곧 인격(人格)이라는 말로 그 뜻을 요약할 수 있겠는데 이번 소헌 선생의 고희서법전(대구시립도서관,1977.9.13~9.19)은 이 말의 참 뜻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서(書)는 마음을 그리는 그림(心畵)이라는 것을 실감있게 증명하고 있다. 침묵 속의 미소로 말하는 그의 겸허(謙虛) 중후(重厚)한 인품을 글자 한 점(點) 한 획(劃)과 일치시키고 있다. 그의 서(書)에 대한 태도는 예(藝)를 초월하여 도(道)나 선(禪)의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연전(年前)의 가혹한 신병(身病)을 딛고 재기할 수 있은 것은 이 서도(書道)를 통해서 스스로 얻은 수양과 정신력 때문일 것이라 믿어 반갑고 장한 일이다. 69년 5월 첫 개인전 이래 대구에서 두 번째로 가진 이번 서법전의 작품은 첫 회에 비해 더 견실하고 독특한 맛을 풍기고 있다. 이는 고금제가(古今諸家)에서 정통(正統)을 추구하는 진지한 자세, 자체완성(自體完成)에 정진하는 의욕과 끊임없이 탐구하는 구도자적(求道者的)인 성실성이 승화(昇華)를 이룬 것이다. 소헌의 해·행서(楷·行書)는 왕희지(王羲之)·유공권(柳公權)·안진경(顔眞卿)·구양순(歐陽詢)의 정통적 서법에서 득력(得力), 이에 예(隷)·전(篆)과 육조체(六朝體)까지 조화시킨 독특한 자체(自體)를 이루고 있는데(이로서 제15회 국전에 특선), 그의 이 외유내강(外柔內剛)한 생채감(生彩感)을 주는 필체(筆體)는 병풍 「소서(素書)」, 「경재잠(敬齋箴)」, 「적벽부(赤壁賦)」에서 원숙(圓熟)하고 자재(自在)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통(正統)에 바탕을 둔 이 필체(筆體)는 현대감각이란 진취적(進取的) 서풍 또한 잃지 않고 있다. 요즘 일부 서예인들이 현대감각 만을 너무 주장한 나머지 정통(正統)에서 멀어져가는 감이 있는데 후학(後學)을 위해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굳건한 정통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현대적 감각을 추구하려는 그의 구도정신은 (고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예도인(藝道人)의 철학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 략>. 왕철(旺哲) 이동규(李東圭) <서예가·도전심사위원>」 (영남일보,1977.9.20.)

서예가 김기탁(金基卓) 교수는 ‘소헌서예포럼’에서 「소헌 선생의 작품은 자유로운 영혼과 무불경(毋不敬)의 서예정신의 묘합(妙合)으로 시간이 더할수록 작품의 미추(美醜)에 대한 논란을 떠나 5체(五體)가 거침없이 그의 작품에 표현되었다. 고희전(古稀展)의 서예는 졸박(拙樸)하면서도 유려(流麗)한 정통서법(正統書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글씨의 미추(美醜)를 따지기 앞서 결코 졸박과 유려를 겸비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유려함은 자칫 연미(姸媚)함과 절제(切除) 없음으로 흐를 수 있고 졸박함은 거칠고 촌스러움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헌 선생은 서법(書法)을 기본 바탕으로 삼고 운필(運筆)하였기에 졸박(拙樸) 유려(流麗)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필치는 운치있는 글씨의 획으로 나타났다. 그 운치있는 획은 때로는 초초(草草)한 붓놀림의 우졸(愚拙)함에서도 나타난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고 아울러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붓놀림의 우졸(愚拙)함에는 야일미(野逸美)도 함께 담겨 있다. 더 나아가 일기(逸氣)의 흔적까지도 찾아 볼 수 있다.

선생은 어린시절에 좋은 스승을 만나 정통서법을 익혔고, 상대(上代)의 법첩(法帖)을 열람하면서 끊임없이 연구하여 문하생들에게도 전수시켰으며 자신도 탐구하는 열정으로 집약된 것이 바로 ‘고희서법전(古稀書法展)’이었다. 서예전(書藝展)이라기 보다 한평생 연구하고 노력하여 응집된 서법전(書法展)이라 한 마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몸소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탁<전,국립상주대총장>」라고 주제발표를 했다. (소헌서예포럼 제1회 심포지엄(2015.10.31), 주제발표1.‘서여기인을 주창한 서예가’에서 발췌)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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