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식물 핑크뮬리(Pink Muhly Grass), 축제까지 해야 하나
외래식물 핑크뮬리(Pink Muhly Grass), 축제까지 해야 하나
  • 승인 2019.10.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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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핑크뮬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가.

큰 상처를 남긴 태풍이 지나가고, 평소 다니던 수변공원 산책을 위해 길을 나섰다. 산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갈래로 나뉘는 물길이 생기고, 흙길은 미끄러워 조심을 해야 했다. 그리고 편안한 길을 조금 걷다가 여린 분홍으로 물든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기에도 오묘하고 색다른 풍경이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하늘하늘하고 몽롱한 분홍색 안개가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하고, 분홍으로 물들인 솜사탕을 무더기로 모아놓은 듯 보는 사람의 시선과 발길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이름에 대한 안내표지라도 있는지를 둘러보았으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요즘 가장 ‘핫(hot)’한 것이라며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직 그것도 몰랐느냐고 지청구까지 들을 뻔했으니, 머쓱해지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것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핑크뮬리(Pink Muhly Grass)는 ‘벼과 식물로서 미국 중부와 서부 등 따뜻한 지역의 평야나 길가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며, 조경용으로 식재된다.’고 적혀있다. 모래나 자갈이 많고 배수가 잘 되며, 약간 건조한 트인 지대와 해가 잘 드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붉은 색 혹은 자주색으로 9~11월에 개화하며, 습한 기후나 더위, 가뭄 등을 잘 견딜 수 있고,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쉽게 견딘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5년 전 제주도에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어딜 가나 그것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얼마나 환경적응이 빠르다는 뜻인가. 이 추세로 간다면 수 년 내에 전국의 볕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하는 언덕이나 공원 등에는 빈자리 없이 분홍색 풀로 뒤덮일 것 같은 유쾌하지 못한 예감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천대를 받는 것처럼, 머지않아 핑크뮬리도 ‘유해식물’로 지정되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우리에게는 이미 외래종의 피해로 골머리를 앓는 동식물에 대한 사례가 많다. 황소개구리와 배스, 가시박 등이 그렇다. 가시박의 경우 오이나 호박 등의 접붙이기용 작물로 처음 들여올 때의 유용한 목적과는 달리 강과 하천 주변으로 급속하게 번져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등 그 피해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꽃과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로, 지방자치단체마다 같은 꽃을 대상으로 경쟁적으로 축제를 벌이는 모습이 지나칠 정도라 싶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래식물인 핑크뮬리가 지자체가 관리·운영하는 수목원이나 생태공원, 하천변 등에 광범위하게 자리를 펼치고 축제까지 열리고 있다니, 그것이야말로 황제대접이 아닌가 싶다.

이미 분홍으로 물든 제주, 서울, 부산, 경주, 함안, 고창 등 각지의 축제현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들이 SNS(Social Network Service) 공간에 자랑스럽게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만지면 으스러질 듯 여리고 어여쁜 축제의 주인공이 외래식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긴 방금 잠에서 깨어난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모습이 관심을 끌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핑크뮬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도 어떤 이유나 배경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식물들에게 주는 피해가 아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차지한 자리에는 분명 우리의 정서와 동심을 어루만져주는 들국화, 코스모스, 엉겅퀴, 쑥부쟁이 등 아름다운 꽃들이 선선한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리를 빼앗긴 그 자체로도 피해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이국적인 이름에 걸맞게 그 색과 모양이 환상적이기로서니, 축제까지 해야 하는지. 아울러 지역별로 차별화되고 특색 있는 축제를 펼쳐 볼 생각은 없으신지, 주최 측에 묻고 싶다.

유행을 따라잡기에 발 벗고 나서는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경쟁심으로 몇 년 사이 토종 식물들이 설 땅을 잃어버리고, 외국에서 들어온 낯선 풀이 버젓이 자리를 차지해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은 차마 보기에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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