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고마운 이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고마운 이유
  • 승인 2019.10.16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지나고 보니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때로는 오랜 친구가,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때로는 정말 믿고 존경했던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이 내게 어떤 기억을 남겼을까? 상처일까? 아니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까? 나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돌아보니 내게 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나를 키웠다. 나를 더 성숙하게 했고, 나의 그릇을 더 키운 사람들이다.

한 10여 년 전, 나는 어떤 한 사람 때문에 몇 달을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별 의미 없는 사람이었다면 쉬운 말로 그냥 무시하거나 미워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힘들 때 나를 많이 도와준 사람이었고, 또한 함께 울고 웃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때문에 힘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퇴사한 이후로 그가 나를 욕하기 시작했고, 미워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나는 도무지 그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의 기분 탓이거니 하면서 그의 행동을 그냥 무시하려 했다. 그러면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나도 힘들었고, 그도 힘들었다. 그 문제로 나는 거의 몇 달을 괴로워했다. 미워할 수 없는 그를 미워해야 함이 힘들었다. 더욱이 내가 무엇 때문에 그에게 미움을 받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더 슬펐다. 이유를 물어봐도 그는 “두고 보라”는 말만 하고 나를 파괴하겠다고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이유를 알면 내가 들어보고 난 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라도 할 텐데 이유를 모른 채 몇 달간 지속되는 미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 당시 내겐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돌아보면 내 삶에 넘어야 할 산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통과해야 할 과제가 내 앞에 한 번씩 주어졌다. 그 과제가 주어지고 머리를 싸매고 몇 달 끙끙 앓다보면 어느 날 안개가 걷히듯 뚜렷하게 힘듦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날이 찾아왔다. 그 후 나는 껍질을 한 꺼풀을 벗겨내고, 더 성숙의 단계로 올라가곤 했다.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그와의 일도 내가 넘어가야 할 언덕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해결되는 그 시간 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드디어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날이 찾아왔다. 그날의 상황은 이러했다.

그와의 갈등으로 근 반년 이상을 괴로워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나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숨이라도 쉬어야 살겠다는 생각에 회사에는 휴가를 내고 집에서 가까운 곳의 사찰을 찾았다. 그 사찰은 내게 종교적인 장소는 아니었다. 때는 가을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사찰이 있는 산의 계곡에 단풍이 예쁘다 하여 머리를 식힐 겸 사찰이 있는 산을 찾아갔던 것이다. 산은 말 그대로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낙엽들은 바닥에 이불처럼 폭신하게 깔려 있었고 바람도 불어, 만추(晩秋)를 느끼기에는 최고의 날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얼음장 같았다. 평상시 같으면 너무나 행복해하며 기쁜 마음으로 걸었을 그 길을, 그날은 그냥 말없이 걷고만 있었다.

기쁜 마음 하나 없이, 위로되는 기분 하나 없이 멍하니 계곡 바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내려오던 길, 솔 숲길에 세워둔 표지판 같은 곳에 붙여진 어떤 글귀를 보게 되었다. 그 글귀가 내 눈에 줌인(zoom in) 되어 확 들어왔다. 지금은 정확히 문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말이었다.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십시오. 그 사람은 지금 당신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글귀를 보고 난 뒤, 내 마음에 막혀 있던 것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걸 경험했다. 마치 꽉 막힌 세면대가 뻥 뚫린 기분이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물론 그는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단 사실을. 그걸 깨닫는 순간 너무나 미안했고 또한 고마웠다.

그릇의 크기가 비슷하면 늘 마찰이 생기는 법이다. 사람으로 인한 갈등과, 힘듦은 결국 내 그릇이 작아 그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그릇을 키우면 모두 해결되고도 남음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