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과 웰다잉
웰빙과 웰다잉
  • 승인 2019.10.2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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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대구시의사회 정책이사
삶을 ‘몸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에 비유한다면, 그 시작인 이륙(태어남)은 자신이 결정할 수 없지만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위해 가야할 곳(well-being)과 여행을 끝내는 착륙(well-dying)은 어느 정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비행기가 낡아서 고장 나거나 연료가 떨어져서 여행을 끝내고 착륙해야 할 때가 갑자기 오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기에 바빠서 여행의 끝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착륙(well-dying)하기가 쉽지 않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비행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착륙이라고 한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부분이므로 잘 비행(well-being)한 사람이 잘 착륙(well-dying)할 수 있을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많은 말기환자를 상담하면서, 사람은 자신이 불치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이라는 5단계의 심리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자신의 삶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그 충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기 어려워(denial, 부정) 하고, 다른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고 확인하는 사례가 많다. 그 다음 과정으로 분노(anger)가 생길 수 있다. ‘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이런 불행이 생겼는가?’라는 생각으로 절대자나 주위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다. 그 후에는 불가피한 착륙을 받아들이는(accept, 수용) 과정을 거쳐서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며 삶의 지혜를 쌓아온(well-being) 사람은 의연하고 성숙하게 이 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분노 단계에서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안전하게 착륙(well-dying)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난치병의 경우, 한국인들은 근거없는 민간처방을 유난히 많이 한다. 세계적으로 암환자들이 모이는 암전문치료 병원인 MD앤더슨센터에서 한국인과 미국인이 암을 대하는 자세가 아주 다르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은 신이 결정한다고 믿으며, 병 치료를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긴다. 자신은 마음과 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집중하며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한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출근하고 죽기 전날까지 일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암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부작용이 드물고 치료율도 높다.

그러나 한국인은 암에 걸리면 일단 직장부터 그만두고 하루 종일 암과 죽음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양철학과 감성적인 민족성의 영향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가지 믿을 수 없는 민간처방을 찾아다니며 상태를 악화시키는 사람이 많다.

최근 동물구충제(펜벤다졸)가 말기암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불확실한 동영상 때문에 시중에 구할수 없을 정도로 판매된 일이 있었다. 안전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한다는 의사의 조언 기사에 ‘의료계가 수입이 줄까봐 값싸고 좋은 치료법이 사용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너희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아느냐.’는 음모론과 불신의 댓글이 많았다. 한국인의 이러한 비과학적인 생각이 결과적으로 환자의 안착(well-dying)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삶을 타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복하고 풍성한 여행으로 만드는 웰빙도 중요하지만, 평안하게 여행을 마무리하는 웰다잉도 중요하다. 불가피하게 여행을 마치고 착륙해야할 때가 오면, 가족들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근거없는 치료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현대의학과 의료인의 조언을 참조하여 이성적으로 성숙하게 대처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 추락하지 않고 가볍고 평안하게 착륙(well-dying)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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