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가로수 길
은행나무 가로수 길
  • 승인 2019.10.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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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내려 걷는 10분간의 거리 가로수는 은행나무이다. 은행나무는 한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어 추운 겨울을 더 추워보이게 한다. 얼어붙어 있던 가지에 잎이 돋아나면 봄이다. 아주 여리고 노르스름한 잎들이 아기 손처럼 부드럽게 돋아나 살랑살랑 봄바람을 불러들이는 것 같다. 무심코 걷던 길에서 마주치는 봄소식이다. 하루하루 잎이 커지고 색깔이 녹색으로 바뀌면 퇴근길 넓은 도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고개를 들면 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인다. 퇴근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한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모두 우산 속에 있는 것처럼 은행나무아래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 밤늦게 까지 야근을 하고 가는 날에는 가로등에 비친 은행나무와 네거리 자동차 불빛과 건물 불빛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은행나무 한 그루의 싱싱함과 푸르름이 돋보인다. 사진을 찍어 휴대폰 배경 사진으로 쓰기까지 했다. 특히 가을이면 노란색으로 물들어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굳이 멀리 홍천 은행나무숲까지 가지 않아도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근데 딱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다. 바로 바닥에 떨어진 열매이다. 떨어질 때부터 썩는 냄새가 코를 심하게 자극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껍질이 물러 터져 물이 나온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가다가 닿기라도 할까 신경을 쓴다. 새로 깔아놓은 보도 블럭도 그해 가을에 시커매졌다. 곳곳에 은행열매의 흔적이 가득하다.

한 동료분이 출근길에 차 안에서 은행나무를 보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고 했다. 나무밑동에 하얗게 색칠을 해 놓은 것이 있었고, 그 나무들은 은행열매가 달린 암나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올해 빨리 열매를 땄고 올 겨울에 베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하얀 칠이 된 나무와 칠이 없는 나무가 홍희 눈에도 보였다.

악취를 유발시키는 은행나무를 왜 심어 시민들을 불편하게 할까 알아보았다. 은행나무는 해충들이 싫어하는 물질을 내뿜어 병충해에 강하며, 도시의 매연 등을 흡수하는 자정작용이 뛰어나서 지자체에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놀라운 생명의 힘으로 고생대 말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의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살아있는 유일한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 식물이라고 한다. 아무리 오래된 줄기 밑에서도 새싹이 돋아나고 가지와 뿌리를 없애고 줄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잎이 돋는다고 한다. 서울에서 은행나무 가로수는 2012년 40% 퍼센트가 넘고, 부산은 2018년 기준 21%, 대구시는 24% 정도 된다고 한다.

은행나무가로수가 많은 서울시에서는 민원이 많아 ‘은행나무(가로수) 열매처리 종합대책’까지 내놓았다. 은행 열매가 떨어져 발걸음을 방해하고 악취를 풍기기 전에 조기 채취하고 민원이 발생하면 즉시 처리하는 서비스를 시행한다. 또 은행나무(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기도 하고, 뒤집은 우산 모양의 열매 수거 망을 은행나무줄기에 달아 일일이 쓸어 모으는 수고를 덜기도 했다. 대구에서도 비슷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는가 보다.

흰 칠을 한 나무를 베어 낼 수도 있다고 퇴근길에 다른 동료에게 전했다. 같이 퇴근하는 시간이 잦은 동료인데 늘 은행나무를 보면서 계절을 느끼고 자연을 느꼈던 우리들이었다. 냄새가 역겨워 잘 됐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반응은 뜻밖이었다. 왜요? 냄새는 잠깐 나지만, 오랫동안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왜 잘라요? 안 잘랐으면 좋겠어요. 너무 아쉬워하는 말씀에 홍희는 위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확실치는 않다고, 수나무로 바꿔 심을 수도 있고, 요즘은 출근하기 전에 미리 떨어진 열매를 치우고, 수시로 청소를 해서 깨끗한 것 같다고. 아마 캐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한때 잠깐 냄새 때문에 많은 이점이 있는 은행나무가 가로수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듯 애틋하게 여기는 시민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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