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두 손
노인의 두 손
  • 승인 2019.10.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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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경영학박사
“소년은 노인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두 손을 보고 얼굴을 돌려 소리 내어 울었다. 그는 커피를 가지러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길을 내려갔다. 길을 내려가면서도 계속 울었다” 허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마지막 부분의 한 대목이다. 노인은 먼 바다로 나가 마침내 며칠간 악전고투하며 큰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곧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의 공격으로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기진맥진하여 돌아온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진다.

노인의 귀가를 매일 기다리던 소년은 어느 날, 돌아와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한다. 노인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두 손을 본다. 그리고 얼굴을 돌려 소리 내어 운다. 소년은 노인의 두 손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노인의 두 손, 그 무엇이 소년을 울게 했을까?

어린 시절, 문학소년 때 읽었던 ‘노인과 바다’를 40여년 만에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매월 갖는 인문학 모임에서 ‘노인과 바다’를 읽고 같이 토의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한 번은 대충 읽으며 줄거리를 파악해 보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줄을 그어가며 꼼꼼히 읽어 보았다. 모든 문학작품이 독자의 경륜과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겠지만 어린 시절과 다른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중의 하나가 ‘노인의 두 손’에 대한 ‘소년의 눈물’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허밍웨이는 의식적으로 ‘소년은 울고 있었다’라는 구절을 반복하고 있는 듯했다. “소년은 문밖으로 나와 닳아빠진 산호초 길을 걸어가면서 또 울고 있었다.” 그 문장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두 손을 펴서 가만히 들여 보았다. 평소 험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두 손은 그리 곱지 않다. 마디가 굵어져 있고 여기저기에 상처와 굳은살과 흉터가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생을 사무직에 계셨던 아버지의 손은 부드럽고 고왔다. 그러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윗마디에 단단하게 굳은살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글씨를 많이 써서 그렇게 되었지. 아버지는 평생 펜대를 굴려 너희를 키웠단다” 아버지 대신 집안 대소사를 감당하느라 억센 손과 굵은 손마디를 가지신 어머니가 한마디 거드신다. 굳은살이 박혀있는 고운 손을 가진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나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제일 윗마디에도 살이 굳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제법 생기는 듯하던 굳은살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부터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굳은살이 박혀있는 아버지의 부드럽고 고운 손은 강한 인상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행여 내가 잠든 사이, 아들 녀석은 나의 두 손을 보았을까? 그리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소년이 흘린 눈물은 그렇게 아버지와 나의 두 손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어느 순간은 소년이 되어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있었고, 어느 순간은 노인이 되어 두 손을 소년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곱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나의 두 손이다. 아버지처럼 가운데 손가락 제일 윗마디 굳은살마저도 생기다가 만듯한 나의 두 손이다. 아들에게 나의 두 손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몇 년 전이었던가. 어느 날 새벽에 아들과 나는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며칠 후에 출국해야 할 아들이 안쓰러워 함께 기도하자며 아들을 옆자리로 불렀다. 아들이 기도하기 위해 앉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나도 힘을 주어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들이 먼저 기도하고 이어서 내가 기도했다. 그런데 내가 기도를 시작하자 곧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며 기도하면서 나와 아들은 잡은 두 손을 더욱 꼭 잡았다. 함께 기도하며 잡았던 아들의 손은 아직 내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소년이 잠든 노인의 두 손을 보듯, 언젠가 아들도 내 손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아들이 인생의 경륜이라곤 보이지 않는 내 손을 보고, 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 아들이 나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일이 다시 있다면, 이번에는 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싶다. 기도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우는 아들은 아버지인 나에게 가장 큰 영예이며 응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년의 울음과 눈물도 노인의 삶에 바치는 최고의 헌사이자 존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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