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학벌사회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 승인 2019.10.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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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현
사회2부장
“조국 전(前)법무부장관 같은 능력이 없거나 건물주가 아니면 자녀도 부모도 힘들다”

조국 전 장관이 취임 66일 만인 지난 14일 사퇴했지만 그가 남긴 우리 사회의 암울한 자화상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같은 학벌중심사회, 자녀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 부모들이 상당수인 현실에서는 조 전 장관이 자녀의 대학 입학 및 의전원 합격을 위해 한 여러 행동들이 위법 여부를 떠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학생과 학부모, 특히 학부모와 우리 사회는 이른바 SKY대학에 대한 환상과 동경심을 갖고 있다. 마치 자녀들이 SKY대학에만 합격하면 평생의 삶이 꽃길만 걸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때문에 자녀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면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딸은 천재라고 생각하며 맘속으로 주문을 건다. ‘우리 애는 천재야. 똑똑해. 내가 조금만 뒷바라지하면 서울대에 들어가 앞으로 잘될 거야.’ 이 순간부터 부모의 삶은 뒷전이고 오직 자녀만 보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유치원, 초등학교는 시험도 없거나 간혹 시험을 쳐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에다 전교석차가 나오지 않기때문에 ‘수’ 혹은 ‘100점’만 받아오면 그때부터 내 자식만큼은 천재로 인식하고 싶어하는 부모 마음이 개입된다.

이후의 전개과정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가격 불문하고 자녀 두뇌발달 및 교육에 좋다는 책이란 책은 다 산다. 국어·영어·수학은 물론 피아노, 바이올린, 축구, 심지어 줄넘기 등 학원이란 학원은 다 보낸다. 최근 A지상파 방송에도 나왔듯이 자녀를 서울대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부모의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과정에서 먼저 영재학교, 특목고, 전국모집단위 자사고 입학을 위해 서울 강남 대치동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한 자녀에게 학원비 1억8천만~2억4천만원 정도를 쓴다고 한다.

고등학교 3년 과정은 부모의 재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그 금액은 상상에 맡긴다.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구 등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은 곳은 서울 대치동에 뒤쳐지지도 않는다.

이런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고교에 진학할 때면 영재학교, 특목고(과학고, 외국어고), 전국단위 자사고, 자사고, 일반고등으로 나뉜다. 이미 고교 서열화가 묵시적으로 형성된 상태다. 평준화 일반고도 지역별 격차가 심해 부모의 경제력과 관심이 높은 지역은 웬만한 자사고는 따라오지도 못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고교에 입학하면 대학입학(수시)을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에 목을 맨다. 내신은 내신대로 따야 하고 각종 생활기록부에 올라가는 봉사활동, 인턴활동, 대회 참여 및 수상 등을 3년 동안 해야 한다. 상당수 맞벌이 부부나 돈은 좀 있는데 정보는 없는 부모들은 자녀가 고교에 입학한 후 사실상 어두운 밤길을 걷듯 헤매기 시작한다. 수백 수천 가지에 달하는 대학별 학종전형을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대처를 못한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출중한 능력을 가진 부모들은 품앗이 등을 통해 자녀 스펙쌓기를 마친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처럼 최상위 특권층은 자녀를 위해 일반인은 용어조차 모르는 고급 스펙을 쌓도록 하고 이미 출발선 저 멀리 앞에서 달리도록 하는 데다 그 같은 능력이 없는 전문직, 부유층들은 한 달에 수백만 원 이상 고액과외를 시키고 있으니 중산층이나 맞벌이 부부는 엄두도 못낼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녀가 천재가 아닌 것을 깨닫고 체념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 중산층들도 아들, 딸이 고3생활을 마칠 때까지 부모 자신은 뒷전인 채 돈과 시간을 쏟아 붓는다. 물론 아들, 딸 즉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부모보다 더할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부모의 기대, 일선학교에서는 내신 1등급, 심할 경우 최상위권 학생 1%를 위해 기도 못펴고 다니는 학교생활, 방과후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친 몸을 이끌며 다녀야 하는 학원들.

이 12년의 과정이 끝날 때쯤 SKY에 합격하는 학생들은 과연 몇 %나 될까. 여기다 언론들은 수능이 끝나면 서울대 합격생 배출 고교를 순위별로 적어 기사화한다. 학벌사회가 아닌 능력 위주 사회를 위해 앞장서야 할 언론부터 서울대 합격생수로 고교 서열화를 조장한다. 과연 그런 기사를 적어내는 언론사의 자녀들은 얼만큼 서울대에 다니고 있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대학 입시 정책을 수정, 보완한다고 한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학벌 위주 사회가 지속되는 한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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