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성지를 찾아서
순교 성지를 찾아서
  • 승인 2019.10.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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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지방자치연구소장
인간과 종교는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생로병사를 겪으면서 한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에 정신적·영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 대상을 희구한다. 믿음이나 신앙의 출발이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신앙대상이 존재하며 그것을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이다. 토테미즘과 체계화된 종교가 공존하는 근거다. 서양은 기독교에, 동양은 불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나름의 종교문화 형성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 석가, 공자는 범인이 미치지 못할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어 신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인간이었지만 신이 되었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체계화 되어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종교로 발전되어 왔다.

대학에 있을 때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수녀들의 지도교수를 맡은 적이 있다. 평소 수녀에 대한 외경심을 가진 터라 평생을 종교에 귀의한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자기 종교에 대한 열정과 믿음에서 남이 모르는 무한한 행복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 7월 초, 이스라엘 성지순례 길을 떠났다. 기독교 신자로서 벼뤄 오던 버킷리스트였다. 수천 년의 기독교문화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어 종교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역사는 대략 4천5백 여 년이 된다고 한다. 큰 틀에서 기독교를 신·구약시대로 나눌 수 있고 그 안에 가톨릭이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톨릭을 알아야 한다. 종교는 형이상학을 초월하는 위치에 있지만 종교조직은 인간에 의해 관리되는 체계다.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신을 앞세워 같은 종교를 분화시키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은 수천 년의 전통을 피라미드식 조직형태를 취하면서 종교체제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독교는 인간욕구의 다양성으로 분화종교로 꾸준히 변화 발전되었고 그에 따라 교회는 독립적 단일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 근교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티순교성지’를 찾았다. 해발 약 700미터 한티 재와 인접해 있는 이곳은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등 경상도 천주교 수난 때에 팔공산 깊은 산골에 숨어 지내다 순교한 옛 천주교인들이 살던 곳이다. 당시 거주하던 움막과 예배 장소인 공소 등이 재현되어 있다. 지금은 피정의 집, 순례자의 성당 등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순례자는 물론 공원 같은 분위기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33기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묘소 길에 들어섰다. ‘십자가의 길’ 이라는 푯말을 따라 올라가는 산언덕 오솔길은 가파르지가 않아 보행이 한결 편하다. 산속이라 사위가 나무숲이고 적막감마저 든다. 풀벌레가 뛰는 것을 보면서 가끔 무덤에 눈을 주면서 가을의 초입을 느낀다. 40여 분 간 걷는 길에는 띄엄띄엄 무덤들이 있다. 비석도 없이 오랜 풍상으로 봉이 평평하다. 고즈넉함이 순례자를 자꾸 숙연케 한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종교와 인간의 삶을 되뇌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아주 유익했다. 한티순교지를 다녀 온 후 기독교 성지순례지를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10월 초, 여수시 율촌에 있는 손양원 목사 순교지로 향했다. 손양원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 1948년 여순사건 때 장남과 차남을 여의고 자식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는 6·25때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사회주의국가가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은 순전한 인간의 정치적 욕심이라는 생각을 떠 올린다. 전국의 가톨릭 순교성지가 단일체제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순교기념관은 단일교회에서 건립하고 관리되고 있다. 손양원 목사는 율촌에 있는 애양원교회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면서 사역하였다. 바로 그 교회가 주체가 되어 순교기념관을 건립한 것이다. 1994년 3월에 준공된 이 기념관은 512개 교회, 108개 기관, 663명의 개인 헌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순교기념관 가까이 낮은 산 중턱에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의 무덤이 위아래에 있다. 묘지는 규모가 크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기대에 비해 순교지에서 감흥을 받지 못한 자신을 책하면서 오솔 산길을 내려온다. 가톨릭 순교 성지에 비해 기독교 성지는 대부분 기독교인들만이 찾는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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