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리 가는 길
수도리 가는 길
  • 승인 2019.10.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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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무섬으로 가는 길이다. 주변의 풍경들이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아스라이 남아있다. 무성하게 들끓던 고속도로 위의 소음들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로 내려서니 이제까지 소란스럽던 마음이 어머니의 품속처럼 평온해진다.

무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內城川)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흐르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들앉아 있다. 풍수 지리학상으로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이라 하여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꼽힌다.

방죽 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다. 길 위로 잠시, 여우비가 뿌리고 지나간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노란 달맞이꽃들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달려와 안긴다. 천정만 바라보며 누워계신 시어머니의 굴곡진 삶이 늦가을 비처럼 따라 흐른다.

어머니는 십 수 년 째 물 위에 떠 있는 무섬처럼 요양원에 누워 계신다. 먹지도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몸을 진흙 속에 묻은 채 침대 위에서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 정류장에 서 계신 것일까. 사진첩을 뒤적이듯 살아온 날들, 회상하고 정리하며 먼저 가신 시아버지를 만나게 될 날을 그리고 계실까. 아름다운 꿈을 꾸듯 잠들어 있다.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가 강물처럼 흐른다.

강변에 내려서니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바삐 걸으려고 하면 할수록 발목을 잡아끄는 세상사처럼 신발 가득 넘어 들어온 모래가 발자국마다 씹힌다. 가끔은 비워내며 쉬어가라 말하는 듯. 강 건너, 외나무다리를 성큼 건너간 갈대숲 사이로 그리움이 인다. 굴곡진 세월을 흘러가고 흘러오는 동안, 외나무다리가 무섬마을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이듯 어머니와 하루의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는 링거 줄 뿐이다. 멀건 미음이 링거와 목으로 뚫린 줄로 흘러든 만큼 하루 치 목숨값을 받아낼 수 있다. 괘종시계처럼 때를 맞추어 이별을 무장하고 찾아든 가족들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시간은 강물과 함께 외나무다리처럼 길게 늘어뜨려진 링거 줄 따라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과 잊혀가는 것들이 어우러져 다리 아래로 흐른다. 물의 주름들 사이사이로 어머니도 나도 인연의 길 따라 속절없이 흐른다. 떠나보낸 어제가 켜켜이 모래로 쌓이고 흘러오는 내일이 물길을 튼다. 올라가지도 내려서지도 못하고 선 둘 곳 없는 마음자리는, 현재란 다리위에서 가뭇없이 사그라지는 어머니의 기억 끝자락을 붙들어 잡고 애태우듯 서성인다.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폭이 좁다. 이름대로 두 사람이 비껴갈 수 없다. 좁은 다리를 건너다보니 중간 중간에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해갈 수 있도록 짧은 다리인 ‘비껴다리’를 만들어둔 듯하다. 살아가는 동안 부대끼고 고단함이 찾아들 때 잠시 비켜서서 마음을 비우고 삭이라는 듯. 문득 어머니도, 어쩌면 ‘비껴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살가운 살구나무가 서 있는 일곱 살배기 어린 날의 아이가 되어 어머니의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 집으로 날아가는 행복한 꿈을 꾸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꿈속의 꿈을 넘나들며 무섬의 외나무다리를 사뿐사뿐 건너가고 계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찡하게 아려온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무섬마을을 돌아 뭍으로 나온다. 별천지의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외나무다리를 건너오며 어머니의 꿈속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말하리라. 비록 말하지 못하고 표현할 수 없다고 해도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더는 늦지 않게.

“늦어서 죄송해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수도리를 휘감아 도는 외나무다리 위로 시월의 노을이 물들어 간다. 십 리를 돌아나가는 강물 위로 삭이지 못한 마음 한 자락 슬쩍 내려놓은 채 무섬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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