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전하는 말
단풍이 전하는 말
  • 승인 2019.10.29 2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봉조 수필가
정열의 빨강과 매혹적인 노랑, 화사한 주홍과 듬직한 황갈색…. 하루에 두 계절이 오고 갈 만큼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심해지고, 나뭇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여러 종류의 색으로 바뀌어 보는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특별한 여유와 운치가 있다. 그래서 가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을 것이다. 학창시절, 형형색색 나뭇잎을 주워 모아 책갈피에 끼워 말리고는 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거나 생일 선물을 할 때, 그 잎을 함께 담아 우정을 표현했던 아련한 추억도 남아있다.

일전에 어떤 단체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야외 체험활동으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숲길을 걷게 된 일이 있었다. 거기서 자연을 무척 사랑하는 듯 보이는 해설사의 말 한 마디가 계속 뇌리에 남아있다.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것은, 그 식물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초록으로 보이던 나뭇잎이 낮이 짧아지고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어떤 과학적 설명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론적 근거에 따르면, 단풍은 가을에 나뭇잎의 색깔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의 차고 건조한 날씨에 아름답게 물들며, 0℃ 이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엽록소의 생산을 중지하고, 잎 속에 안토시아닌이나 카로틴, 크산토필 등 색소를 만들어 붉은색이나 노란색 등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풍의 색이 어떻게 나타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잎 세포에 들어있는 이들 색소 분자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아울러 색소 분자의 양은 온도와 강수량, 낮의 길이 등에 달려있다고 한다. 같은 수종이라도 가용성 탄수화물의 양의 차이에 따라 개체변이가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단풍으로 자신의 개성과 멋을 알리고, 기온이 더 내려가서 물기가 없어지면 낙엽이 되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함으로써 잎으로서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다음해 봄이 오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로 말하자면 단풍이나 낙엽은 정리의 과정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본연의 색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음을 위해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는 인내야말로 사람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래. 걷기 좋은 계절에, 단풍이 수놓인 숲길을 걸으며 여유를 가져보자. 언제 어디서나 느릿느릿 걸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숲은 상큼하고 넉넉하며, 누구도 가리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우리를 감싸준다. 숲은 피톤치드(phytoncide)를 발산해 지쳐가는 사람들의 심신에 치유와 위안을 안겨주고, 더위와 추위를 완화해주며, 공기를 맑게 정화하는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또한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며, 사색의 계절이다. 단풍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낙엽을 밟으며 회상과 그리움에 젖어보는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느끼는 행복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소리 내지 않는 자연의 조화는 아름답고 신비하다. 하지만 사람은 너무 많은 말을 하여 실수를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상대방을 헐뜯고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며, 불신과 타협을 모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선량한 국민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지도층 인사들의 편법과 도덕적 해이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입으로는 대화와 소통을 부르짖으면서 머리로는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과 독선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불타는 단풍’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멋지고 당당한가. 우리 사회의 문화와 의식도 그렇게 불타는 듯 치열하고 떳떳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이유 있는 화합을 원한다. 그리고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양보할 줄 아는 통 큰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그 색깔이 초라해지거나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가을, 단풍이 전하는 말을 들으며 탐욕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지혜와 침묵의 기다림을 되새기는 신선한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