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서 사다리 걷어차기
교육에서 사다리 걷어차기
  • 승인 2019.10.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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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박사
영국의 캠브리지대학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가 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사다리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를 의미하며,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것은 사다리를 이용하여 먼저 위층으로 올라간 뒤 다른 사람이 올라오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장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선진국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선진국들이 신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개도국이나 후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과거 선진국도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한 사실을 간과한 자기 모순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논증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는 계층간 이동을 저해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데 많이 언급되고 있다. 2016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자기 세대에서 경제ㆍ사회적 계층을 상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구주의 비율은 21.8%에 그쳤으며, 대신 계층 이동을 비관적으로 보는 비율은 62.2%에 달했다. 또한 자식 세대에서 계층이 향상될 가능성에 대한 응답 비율도 30.9%로 하락한 반면 비관적 응답 비율은 50.5%로 증가했다.

이러한 계층간 이동을 저해하는 칸막이를 헐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교육이다.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교육을 통해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적 진보도 달성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교육혁신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이 전 장관은 “교육이 사회 계층 이동의 사다리 기능을 더욱 충실히 하도록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한 세대 만에 모든 아이에게 기초 교육을 받게 한 후, 경제 도약기에는 실업계 고교와 이공계 대학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은 사례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학은 공립 못지않게 혹은 더 크게 교육의 형평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상산고가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한 바 있다. 당시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자녀들이 특목고를 졸업하고 외국 명문대학에 진학한 소식이 전해지자 교육계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이 일어났다.

특히 ‘조국 사태’와 ‘인헌고 사태’를 보면서 학생부 종합 전형 위주의 수시 전형은 성적 일변도의 평가에서 벗어나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발한다는 제도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입시의 공정성이라는 면에서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수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서울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한편으로는 입시제도를 개선하면 계층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도 생긴다.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은 “교육이 입시만 바꿔서 될 게 아니라 교육 모델, 교사 역량도 같이 변해야 하며 학종 문제도 교사 역량 강화나 수업 방식의 변화로 교사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을 잘 살펴볼 수 있으면 된다. 그러지 못하다 보니 논문 문제까지 간 것 아니겠냐. 제가 너무 낙관적으로 교사나 학습 모델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민께 죄송하고 제 불찰이다. 그런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교육이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계층 이동의 수단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교육에서 불공정은 모든 학부모들을 쉽게 분노하게 한다. 교육제도의 핵심인 입시제도에 민감한 것은 이해하지만 입시제도에 집착하다 보면 교육 혁신을 주도하는 교사의 역량 강화와 수업방식의 변화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라도 운영을 어떻게 하는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가 발생하므로 교육이 그리고 교육제도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교육 주체의 역량 강화와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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