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와 ‘르네 지라르’의 거대 담론
‘유발 하라리’와 ‘르네 지라르’의 거대 담론
  • 승인 2019.11.04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박사
아름다운 가을이다. 가을 밤 하늘을 보면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왜 여기 있으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미처 익지 못한 풋사과와 같았던 그때의 가을이 마흔 번이나 지나가도 이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마지막까지 그 답을 다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질문이다. 가을이 오는 것이 멈추는 순간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고 싶다.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이 질문에 대한 그의 성찰을 들려준다. 비록 그의 관점이 무신론적이며 진화론적이긴 하지만 그가 풀어내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설득력이 있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화와 같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농업혁명 때에는 대규모로 증가된 사람들을 강하게 결집시키기 위해서 신화는 더욱 필요했다. 대규모의 인원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적 기초인 돈이 필요했으며 길고 복잡한 신화를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신화에 대한 믿음을 위해 희생이 요구되었다. 희생이 클수록 신화는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에 이은 과학혁명으로 시장과 국가는 막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권력을 가진 시장과 국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질과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화를 더욱 강화해야 했다. 더 나아가 유발 하라리는 신화, 즉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믿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이 과학의 새로운 기술과 접목되어 인간은 신이 되려하는 욕망을 가지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신이 되려 하는 인간’, 즉 호모데우스의 출현은 불멸에 대한 인간의 오랜 욕망으로 새로운 길가메시 프로젝트이다.

인간의 기원과 미래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이러한 예측은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또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그가 펼치는 인간에 대한 거대 담론이 무척 사실적(寫實的)이어서 재미있고 또 그 결말이 불안하여 불편함을 받게 된다.

그런데 ‘르네 지라르’덕분에 나의 이런 불편함을 덜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사상가로 인류의 문화 속에 숨겨진 신화를 재해석해 내었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유발 하라리와 르네 지라르의 공통점은 ‘신화’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인류의 기원에 신화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화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그 두 사람의 배경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유발 하라리는 유대인으로서 그의 담론에 창세기의 모티브를 사용하지만 그의 사상은 철저하게 무신론적이며 또 진화론적이다. 그래서 그의 담론은 기독교인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에 의하면 성경의 이야기는 많은 신화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르네 지라르는 인문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지평에서 유대·기독교적인 전통과 가치를 복원한다. 그리고 그의 책 ‘십자가의 인류학’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인류 문명 가운데 숨겨진 신화의 비밀을 폭로한다고 주장한다.

유발 하라리에게 신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에게 신화는 인간의 폭력을 숨기려는 거대한 음모이다.

그는 “인간은 그들 간에 모방 욕구가 가열되면 누군가를 살해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한다”고 했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을 희생제의라는 이름으로 감추려 하는 것이 신화이며, 그것을 폭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이다.

유신론자이며 창조론자인 나는 당연히 르네 지라르의 편에 서며 유발 하라리의 담론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 가을에 인간의 기원에 대한 두 분의 치열한 연구와 통찰에 감탄하며 유발 하라리의 그 두꺼운 책 세권을 정독했다. 정말 인간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떠오른 화두 덕분에 두 분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분들의 책을 읽으며 오늘 나에게 허락된 삶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