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잃은 현대인의 기괴한 몸뚱이
자아를 잃은 현대인의 기괴한 몸뚱이
  • 황인옥
  • 승인 2019.11.06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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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조각가 최수앙’展
짓이긴 얼굴·떼어낸 살점 등
괴기스러운 인체 형상 매개로
자유의지 가진 주체적 개인 표상
행위 부각으로 실재·허구 탐색
관람객 참여형 열린 서사 구조
인간의 물성에 대한 해석 여지
조각가 최수앙 작
최수앙 作.





조각가 최수앙은 인체조각을 매개로 예술적 담론을 펼친다. 그런데 수많은 형상 중에 왜 몸이었을까? 몸은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에서 물질에 해당하며 원초적 본능의 영역으로 치부된다. 반면에 정신은 영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믿음이 강해 보다 상위개념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몸이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측면에서 이 둘을 동등한 위치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몸’, 즉 ‘인체’를 조각하는 작가 최수앙이 몸을 조각의 핵심 대상으로 삼은 이유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다.

작가의 인체조각에서 해부학적인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나같이 불완전하고, 절망적이다. 극사실로 표현된 인체 위에 거세와 변형, 강조와 생략, 축소와 비정형 등 그로테스크적인 표상을 거침없이 들여 놓았다. 그가 “온전하고자 하는 개인과 견고한 집단의 규범 그 사이의 감정의 서사들을 형상에 담고자 했다”며 인체를 그로테스크적으로 표현한 의도를 밝혔다. 그 말 속에서 권력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속내가 읽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말하자면 그는 인간을 사물화 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이는 전시제목이 ‘몸을 벗은 사물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개막한 최수앙 개인전에 설치된 작가의 인체조각과 대면하며 작가의 성향을 섣불리 재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테스크적한 인체를 통해 개별성이 상실되고 있는 현대인의 억눌린 자화상 앞에서 자조적 성향의 그를 떠올리다가도 그 이면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성찰에서는 자존적인 태도도 엿보이기 때문. 전작에 부여했던 거대조직 속의 일원에 불과했던 개인의 지위를 이번 전시작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 개인으로 격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번 전시에서 사회병리적인 메시지보다 작업 과정에서 오롯이 드러나는 작가인 저의 행위를 부각하며 개인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최근에 변화한 작품들을 위주로 꾸렸다. 전시장 입구에서 바라보이는 벽면에 자신의 얼굴을 뜯어낸 흔적이 역력한 기념비적인 여성누드 조각 ‘MATURED MATERIAL’이, 왼쪽 벽면에 인체를 사물로 보고 인체의 각 부위를 부분적인 사물의 덩어리로 떼어내어 각각을 펼쳐 놓은 이미지의 평면작업 ‘DODGING A BALL’이, 맞은 편 벽면에는 그 부분적인 사물들을 쌓은 이미지의 평면작업 ‘A CUP OF WATER’와 함께 늙은 남자의 얼굴을 짓이기는 초록색 두상 조각 ‘UNTITLED’가 설치됐다. 짓이기거나 해체라는 새로운 작업 과정이 개입된 작가의 최근작들이다.

그가 “이전 작품에 표상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다 보니 오히려 그 너머의 무언가를 찾기가 쉽지 않게 흐르는 것 같았고, 견고한 갑옷 같은 현란한 표면의 껍질에 갇혀있는 느낌을 받았다”며 변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기적인 물질들과 지난한 작업 과정들 사이에서 조각가인 나 자신이 망각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실적으로 재현된 형태가 결국 허구로 다가왔고, 그래서 저와 작업 사이에서 일어난 실재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어요.” 적어도 작업 과정에 드러난 작가의 행위만큼은 허구가 아닌 진실일 수 있다는 태도의 반영이었다.

상처로 점철된 극사실적인 인체 위주였던 이전 작업에서 물리적이거나 비유적인 의미가 강했다면 최근작은 작가의 행위 부각이 핵심이다. 이는 비유나 물리적인 의미들을 해체하고 해부해 가고자 하는 태도의 반영이며, 그 결과 두 가지 점에서 새로운 영역이 구축된다. 그 첫째는 개념의 해체와 물성의 강조다. 조각이나 드로잉 된 인체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개념으로서의 인간이 물성으로서의 인간으로 치환된다. 또 하나는 상상의 영역이다. 관람객의 해석 영역이 확장되는 것. 개념을 버림으로써 작가와 관람객 모두가 자유의지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가 “전달자의 역할에서 관객과 함께 완성해가는 협력자의 역할로 확장했다”며 변화 속에 담긴 의미를 밝혔다. “그 동안의 작업이 무언가를 전달하는 지시적인 성격의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의 작업은 작업과 작가 그리고 보는 이들이 함께 서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작업 방향을 추구하려 해요.” 예컨대 남자와 여자 인체를 상황극으로 연출했던 이전 작품에서 젠더적인 성향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런 개념보다 작가의 행위에 집중하는 식이다. 이는 결국 작가나 관람객 모두 주제와 서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현상으로 연결된다. “개념을 부각하든 행위를 부각하든 결국은 인간의 조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죠.” 전시는 12월 29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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