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을 바꾼다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易地則皆然)
입장을 바꾼다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易地則皆然)
  • 승인 2019.11.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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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어떤 일이든지 앞장선다는 것은 어렵다. 무조건 봉사한다는 마음이 앞서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대경예임회 셋째 주 수요일 산행은 원주의 감악산이다. 네이버에 들어가 원주 감악산 등산지도를 검색하다가 붉은 선으로 표시된 곳을 발견하였다. 원주시청 관광안내소에 전화하여 감악산의 가을철 산불방지 입산통제 구간을 물었다. 전화를 받는 분이 산림과에 문의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산림과에 전화하니 홍천국유림관리소에 문의하라고 하였다. ‘원주시청에서도 안내를 하면 쉬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게 답변하고 안내를 하는데도 괜히 심술이 생겼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머리에 떠올리며 홍천국유림관리소에 전화를 하였다. 안내하는 분이 자세히 알아보고 전화 주겠다고 하였다. 한참 후에 홍천국유림관리소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직원이 자세히 안내하는데도 감악산에 대한 지명이 생소한지라 쉽게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았다.

“어디에 보면 그런 내용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네이버에 들어가셔서 가을철 입산통제구역을 검색하면 지도에서 붉은 선으로 그어진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아, 그건 알겠는데 도대체 산림청이나 국유림관리소의 누리집(홈페이지)에 공지하면 더 좋았을 텐데요”하고 볼멘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은근히 짜증이 났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공무원들이 여러 번의 전화를 바꿔주는 행위가 일종의 핑계를 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꾼다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요임금과 순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는 홍수가 잦았다고 한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신하 우(禹)에게 치수를 맡겼다. 우는 황하강의 물길을 돌려서 홍수를 예방하였다. 우는 13년 동안 황하를 다스리는 동안 자기의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지만 집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우는 천하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기가 물에 빠지게 한 것 같이 마음 아파하였다.

같은 시대 후직(後稷)은 처음으로 농경을 가르친 인물이었다. 특히 오곡 재배를 잘하여 농경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후직 역시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기가 굶주리는 것 같이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였다. 우와 후직은 백성들을 위하여 맡은바 책임을 다하려고 자기 집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삐 다녔다고 한다.

공자에게는 안회(顔回)라는 수제자가 있었다. 안회는 난세를 만나서 좁고 누추한 뒷골목에서 거처하며,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만족하였다. 남들은 그러한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생활을 즐거움으로 여겼다. 공자는 안회를 현자라 하였다.

맹자는 ‘우와 후직의 화려한 업적과 안회의 덕을 쌓는 모습이 밖으로 나타난 행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도(道)는 한 가지이다. 다만 본질이 양면으로 나타난데 불과하다. 우와 후직 그리고 안회는 입장을 바꾼다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易地則皆然)’라고 하였다.

공자는 안회에게 “세상에서 자기를 인정하여 임용하면 활발한 정치활동으로 도를 행하고, 세상에서 버려져 임용해 주지 않으면 집에 들어와 덕을 쌓아라”고 했다. 행하고 집에 들어와 덕을 쌓는 도(道)를 한 가지로 보았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노나라의 무성에 있을 때 월나라의 침입이 있었다. 증자는 아랫사람들에게 “적의 군대를 내 집에 들이지 마라. 만약 적의 군인들이 집을 망가뜨리면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완전히 복구하여라”하고 피난을 떠났다.

증자의 제자인 자사가 위나라에 살 때 제나라의 침입이 있었다. 자사는 “만일 내가 떠나면 왕은 누구와 나라를 지키겠느냐?”라 말하며 피난을 가지 않았다.

맹자는 ‘증자도 자사도 도(道)는 한 가지이다. 증자는 무성에서 스승이었으며 부형이었다. 자사는 위나라에서 신하였으며 미약한 존재였다. 다만 입장이 달랐을 뿐이다. 증자와 자사가 입장을 바꾼다면 다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易地則皆然)’고 하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왔다. 두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폭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함의하고 있다. 어떻든 지금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회복탄력성의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마음의 힘인 적응유연성을 길러주는 것은 교사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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