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암환자들에게 개 구충제까지 먹게 만드는가?
누가 암환자들에게 개 구충제까지 먹게 만드는가?
  • 승인 2019.11.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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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얼마 전 말기 폐암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미국인 환자가 개 구충제(펜벤다졸 성분 함유)를 복용하고 암이 완치되었다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후 구충제 복용 공개임상시험을 시작한 직장암 4기 환자가 “복용 2주차에 암 통증이 사라졌다”는 유튜브 영상이 돌았고,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개그맨이 이 약을 복용중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밝히면서, 약국과 인터넷에서는 구충제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의료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람에 대한 임상시험이 전혀 없어 약의 안정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으며, 그 부작용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의견과 함께 약 복용을 자제해 달라는 보도를 내었다. 그러나 전문기관의 경고에도 구충제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위해서 정부는 의료계와 함께 이 약의 유효성과 안정성을 검증해야겠지만,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마음 급한 암환자들이 이를 기다려 줄지는 미지수이다.

약 효능의 진위(眞僞)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 암 환자 등 중증질환자들에게 필수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유효성과 안정성이 입증된 항암제나 치료재료가 고가(高價)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등재에 실패하거나 제외되어 있다는 현실이다. 문케어 정책(급진적 보장성 강화 정책; 이하 문케어) 이후 MRI, 초음파, 상급병실료 등이 빠르게 건강보험 급여화되고 있지만, 정작 절박한 필수의료(중증환자나 응급환자 등)에 대한 보장성 확대는 되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은 과거에 비해 많은 경제발전을 했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문케어 방향은 매우 우려된다. 왜냐하면 세상엔 돈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은 없을뿐더러, 공짜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외면하고 있는 문케어의 종착역은 국민들이 세금 폭탄을 맞고 의료체계가 붕괴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환자는 많은 돈을 내야 하고, 병원은 환자를 열심히 볼수록 적자가 생기는 현재의 필수의료 현실을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보장성 확대 및 투자가 우선임이 상식이다. 이대로 문케어가 진행된다면 정부가 외쳤던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가 아니라 ‘중환자실과 응급실이 없는 나라’, ‘의료보험재정이 없는 나라’ 등 새로운 대한민국이 될 것임을 정부는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학문적 유효성과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한방에 대한 정부지원이다. 현대의학 개념과 지금과 같은 발전이 없었던 시절에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한방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한방에서 하는 치료와 처방을 검증하고 재현해 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그 한계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료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순 없는 일이다. 경험과 비방치료에 갇혀 있는 한방을 민족의학이란 명분하에 현대의학과 공존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안정성과 유효성이 검증 안 된 한방 첩약 급여화 시도, 학문적 근거가 부족한 한방 추나요법 급여화, 그리고 황당한 결과를 낸 한방 난임사업 지원 등은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방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특히 2009년에서 2016년까지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 시행한 한방 난임사업의 결과를 보면, 8.4개월간 임신 성공률이 10.5%로 7~8개월간의 난임 여성 자연임신율인 20~27%에도 훨씬 못 미치는 참담한 수준이다. 물론 한의계는 이 사업의 임신성공률이 20~30%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성적이 좋게 나온 일부 지자체의 결과일 뿐, 전체 성적은 왜 이 사업에 국민세금이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이다. 또한 이 사업에 임부와 태아에 위험할 수 있는 약재들이 제대로 된 안정성 검증 없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문제이다.

요즈음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TV를 켜면 건강과 관련된 음식과 보조식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우리가 복용 시 유효성과 안정성이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하면 또는 ~~이 어디에 좋더라” 하는 일명 ‘카더라’ 통신에 국민건강이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정부는 잘 살펴야 한다.

많은 돈이 필요하고 소수라는 이유로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절박한 국민들(중증질환자나 응급환자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 안정성과 유효성이 부족한 한방사업보다는 필수의료를 포함한 현대의학에 국민세금을 투자하는,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문제점을 제기하는 의료계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의료계와 함께 왜 암 환자들이 개 구충제까지 먹으려 하는지에 대한 현실을 파악하여, 관련된 의료정책을 수정·보완해야 한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들이 정부에 세금을 내고 권력을 위임해 준 것임을 정부는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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