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정병현, 가까이 보면 복잡하고 멀리 보면 단순한 ‘패턴의 비밀’
[서영옥이 만난 작가] 정병현, 가까이 보면 복잡하고 멀리 보면 단순한 ‘패턴의 비밀’
  • 서영옥
  • 승인 2019.11.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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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팔조 전시 예정
오합지 위에 색 올려 건조 반복
빛 모아 종이 태우듯 표면 잘라
면은 고른 크기로 잘게 분할
색 또한 흐트러짐 없이 반듯
질서·혼돈이 서로를 증명하듯
단순함과 복잡함 동시에 제시
정병현작-더이상내가아니다2
정병현 작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정병현작-더이상내가아니다3
정병현 작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정병현작-더이상내가아니다
정병현 작 ‘더 이상 내가 아니다’

20여년 걸어온 길에서 노선 변경했다. 과감하게 내려놓고 지난 행보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엄밀히 말하면 행로이탈이다. 형식 안에 속살 감추기를 멈춘 작가가 생각의 민낯을 드러내며 선포한 말은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이다. 지난 10월(2019년) 수성아트피아 초대전에 건 정병현 작가의 개인전(11회) 제목이다. 작가 정병현의 근작 행간읽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사십대 아들이 팔순 노모에게 물었다. 그에게는 절박하고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지체할 수 없었다. 예술의 이정표를 찾는 심정으로 질문한 것은 자신의 ‘태몽’에 관한 것이다. 먼 기억을 더듬어 어머니가 들려준 아들의 태몽에는 ‘물’이 등장한다. 답을 찾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그 밖에도 많다. 화두와도 같던 ‘근원’에 대한 문답이 깨달음과 연동될 즈음 사고의 전환이 실천으로 옮겨졌다. 바로 작가 정병현의 최근작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에 얽힌 에피소드다.

치바이스(薺白石, 1860∼1957)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의 묘리(妙理)는 닮음과 닮지 않음 사이에 있다(妙在似與不似之間)”고. 그는 또 “그림이 대상과 너무 흡사하면 통속적인 취향에 아첨하는 것이 되며, 너무 다르면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술에서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간주된다. 자칫하면 형식이 내용을 삼킬 수도 있다. 바로 작가 정병현의 예술적 고민과 맞닿는 지점이다. 그는 형식이 생각의 자유를 구속하는 틀이 되는 것은 지양한다. 형식은 형식자체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병현의 생각이다. 많은 작가들이 숙지하고 경계하는 부분이다. 내용과 형식의 균형이 진부한 고민인 것 같지만 경계가 사라진 현대미술에서도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말이든 글이든 전부를 나타낼 수는 없다. 표현에는 한계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글자만 보고 온전한 뜻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정신이나 감각도 같은 경우다. 플라톤은 감각의 세계를 그림자로 설명한다. 감각되는 것의 본질이 이데아(Idea)에 있다고 한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선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한다. 말이나 문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듯이 미술에서도 시각적인 형식에 오롯이 담아낼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이를테면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같은 것이다. 불립문자의 전형은 선문답이 아닐까. 선문답은 비이성적인 화두를 통해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정병현의 근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배경지식이 될 것 같다. 작가는 근작을 잉태하기 전에 오랜 시간 이와 같은 문답을 쉬지 않았다.

작가 정병현은 대학교 졸업 이후 20여년 이상 구상작업에 몰두했다. 전통화법을 고수하는 그룹에 가입하는가 하면, 수차례 구상작가 단체전에 동참한 경력까지, 그의 행보는 구상작가로서의 자리매김에 손색이 없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라고 선포하기 전까지의 이력이다. 알을 깨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새로운 도전은 태동(胎動)에 비견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한다. 작가 정병현의 새로운 비상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수행자처럼 두문불출했던 지난 날을 매미가 견딘 땅속 생활에 비유하면 무리일까. 이제 그는 자유로운 정신에 힘입어 창공으로 높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그럼에도 자신과의 싸움은 꾸준하다. 진행형이며 치열하기까지 하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작업에 매달린다. 정병현의 작품 앞에 서면 경건해지는 이유다. 화두를 들듯 ‘근원’을 찾아가는 그의 진지한 작업 태도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오합지 위에 수십 차례 색을 올리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돋보기로 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 정성을 다해 표면을 오려낸다. 타투 방식을 도입하기 전까지의 무수한 시행착오는 채찍이었다. 필수 코스이자 그의 스승이라면 스승이겠다. 사공은 물이 찬 강에 배를 띄워 노를 저어 갈 때 자유롭다. 정병현 작가가 경험한 다양한 실험과 자기 성찰의 과정을 바다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는 사공에 비유하고 싶다. 이러한 그의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다. 온전한 작품으로 잉태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집중력에 더한 성실함이 담보되었다.

그의 근작을 구성하는 요소의 기반은 ‘물’이다. 태몽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물은 정병현과 불가분하다. 작가는 자신의 이름 한자(漢字)에도 물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귀 띔 한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90년~BC 430년)는 4원소설에서 모든 물질은 물(水, Water), 불(火, Fire), 흙(土, Earth), 공기(空, Air)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탈레스(Thales, BC 624년~BC 545년)는 물이 모든 물질의 근원이라고 한다. 불과 공기가 승천의 성질이라면 흙과 물은 아래(지상계)를 향한다. 지상의 생명체는 물에서 시작된다. 동서양을 통틀어 물은 ‘근원’을 상징한다. 물 기운은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특성이 있고 수용성은 분위기에 민감하면서도 흡입력이 강하여 깊은 정서를 건드리는 작업재로써 용이하다. 예술의 본령을 찾아가는 작가의 작업여정은 재료연구에서부터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지식을 두루 섭렵한다.

정병현의 화면에 새겨진 무늬의 패턴이 차분하면서도 질서정연하다. 잘게 분할된 면과 면은 부딪힘이 적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면의 크기 또한 고르다. 바탕재료인 오합지의 무게감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다. 치우침은 불화를 낳기 때문일까. 종이를 뜯어낼 때도 조화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정된 틀 속에서 겹겹이 축적되어 우러나온 색감까지 흐트러짐이 없이 반듯하고 공평하다는 느낌이 전체적인 느낌이다. 높은 문턱은 낮추고 낮았던 곳은 높이면서 화면 전체의 균형을 일구었다. 그것이 유가의 중용이나 도가의 담(淡) 또는 막(漠)을 떠올리게 한다. 일면은 딱딱하고 엄숙하기도 하다. 초지일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작업했을 작가의 작업태도가 얼비친다. 고도의 집중력과 꾸준한 노동이야말로 정병현의 이러한 작업을 받쳐주는 근본이다.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질서를 유지해서일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단순하다. 단순성은 모든 것을 본질로 예속시킨다. 한편 가까이서 보면 복잡하다. 단순성의 상대어는 복잡성(complexity)이다. 우리가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있을 때 질서정연하다고 한다. 그 반대일 때는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질서와 혼돈은 음양의 관계처럼 맞붙어서 서로를 증명한다. 음양작용에 의해서 우주는 끊임없이 변한다. 변하기에 붙잡을 수도 없다. 이미지로 고정시킬 수도 없다. 단순함과 복잡함도 같은 원리다. 단순함과 복잡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정병현의 화면은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표현의 최대치다. 그는 애초부터 우리의 주관적인 반응에 많은 것을 맡겼다. 어떤 답도 제시하지 않으며 다만 시이불견(視而不見)이라고 한다. 마음 없이 흘려보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의 <정심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러한 정병현의 작업은 스펙트럼이 넓다. 새로운 길을 모색한 그의 작업태도에 기인한다. 모르면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용기가 없으면 알 속에 몸을 숨기게 된다. 공자는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서 학(學)하고 습(習)하라고 했다(학이시습 불역열호(學而時習 不亦說乎). 학하고 습했더니 기쁨이 찾아왔다. 기쁨은 자유로울 때 맛볼 수 있고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누구나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 정병현은 용기 있게 자유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감히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를 선포하며 20여 년 걸어온 길에서 노선 변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면에 내재된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를 부추기진 않았을까. 견고한 기초가 그의 작품 속 내용과 형식에 일조한다. 다가오는 12월 2일부터 2020년 1월까지 갤러리 팔조에서 개인전을 앞둔 정병현의 작업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정병현 인물사진
정병현 작가

※정병현은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서양화과 졸업했다. 개인전 11회 (미국, 서울, 대구, 청도)와 포항 시립 미술관 기획(포항)전 등 수십차례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주)이브자리 작가공모’ 수상(2011)과 봉산 젊은 작가상’ 수상(2006) 한국 수채화 공모전 ‘대상’ 수상(2002)했다. 호서 대학교, 청도 공립 박물관, OCI 머티리얼(주)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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