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은 죄가 없다…디갤러리, 양성철 사진전
붉은색은 죄가 없다…디갤러리, 양성철 사진전
  • 황인옥
  • 승인 2019.11.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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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대신 빨간색 작업 시도
“우리 세대엔 부정당했던 色
긍정 이미지도 공존하더라”
24개 작품 통해 시대상 제시
붉은깃발 별이되어-10
양성철 작 ‘붉은깃발 별이되어’

붉은깃발 별이되어-2
양성철 작 ‘붉은깃발 별이되어’

붉은 기운이 전시장을 감쌌다. 흑백을 고수해온 양성철의 사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강렬한 빨강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빨강이나 흑백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쓰인 색채 중 하나”라는 논리를 폈다.

50여년을 고수해온 흑백의 자리에 빨강을 들여놓은 분명한 이유는 있다. 수면 아래 침묵하던 빨강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느 날 수면 위로 불쑥 솟아올라 아우성을 친 것. 그가 “젊은시절 붉은색은 억압의 상징이었다”고 운을 뗐다. “우리세대의 성장기에 빨강은 빨갱이의 색이라는 교육을 받고, 권위적인 정부일수록 붉은색에 대한 억압이 강했어요. 그런 시기를 지나면서 붉은색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어요.”

2002년 월드컵은 붉은티셔츠의 물결로 넘실댔다. 우리나라 축구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거리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나 작가는 붉은 티셔츠를 차마 입지 못했다. 트라우마 때문. 그랬던 그의 눈에 붉은색이 다시 들어온 것은 2016년. 공산당이나 진보당의 색으로 쓰였던 붉은색이 보수당의 색으로 사용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트라우마가 되살아 난 것. 그가 “붉은색을 부정하고 죄악시 한 보수당이 붉은색을 쓰는 것을 보고 화가 났고, 붉은색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다”며 붉은 색 작업을 시작한 동기를 밝혔다. “붉은색을 죄악시 했던 당이 붉은색을 자신들의 색으로 쓰면서 우리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어요.”

붉은색에 대해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젊은시절 가졌던 트라우마를 들여다본다는 단순한 취지였다. 그런데 붉은 색에 대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자 터부시했던 붉은색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의미 이면에 긍정적인 상징들도 드러났고, 어둡게 접근했던 빨강이 점점 밝아졌다. “붉은색은 배신, 혁명, 투쟁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반면에 행복과 환희, 기쁨 등의 긍정의 이미지도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트라우마가 극복됐죠.” 작가는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보다 이 양극단을 하나로 연결하는데 작업의 포커스를 맞췄다.

간판, 상호, 깃발, 우산, 옷, 염색한 머리카락, 천막, 이정표, 붉은 티셔츠를 입고 도열해 있는 군인 등 일상의 공간이나 여행 중에 만나는 붉은색 풍경은 여지없이 카메라에 담겼다. 4년간 촬영한 사진이 1천여 점이 넘는다. 필요할 경우 강아지 등의 오브제에 작가가 직접 붉은색 물감을 칠하기도 하고, 칠한 오브제를 부수는 등의 작가적 행위를 가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130여점을 선별해 그의 네 번째 사진집에 수록하고, 24점을 전시장에 걸었다. “여러 테마를 채집해서 재편집해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에 내놓았어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사진작업을 병행한 양성철. 그 세월이 50여년이다. 그의 사진 철학은 확고했다. 아방가르드(기성 예술의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한 혁신적인 예술 운동) 정신에 입각한 추상이었다. 관념적 성향이 짙다는 것. 과감한 생략과 불안정한 구도로의 재배치를 통해 관념적인 추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철학적 사유를 담은 ‘공상(空相) 시리즈’와 ‘불상(佛相)시리즈’, 이원적 대립세계의 미학을 설파한 ‘불이(不二) 시리즈’, 사회 고발적 요소가 결합된 ‘공상(空相) 시리즈’ 등으로 작업의 지평을 넓혀왔다. 붉은 계열의 사진은 그가 새롭게 기록하는 사진의 형태다.

“작가는 시대상황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고, 그런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해야 해요. 저 역시 카메라를 통해 저의 시대와 저 자신을 통찰하고자 노력해 왔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구요.” 양성철 개인전은 디갤러리(대구시 중구 동덕로·김광석길)에서 17일까지며, 작가와의 만남은 16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참가비 1만 원. 010-3528-871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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