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된 감정, 절제된 선
정제된 감정, 절제된 선
  • 황인옥
  • 승인 2019.11.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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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까지 굿스페이스 윤종주 展
목탄 드로잉으로 색면추상 강화
윤종주 작
윤종주 작.

몇 마디의 단어로 폐부를 찌를 수 있고, 몇 소절의 음으로도 세상에 없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절제와 깊이가 만났을 때의 결과치는 예측불허일 수 있다. 작가 윤종주의 선 작업이 미니멀의 극치를 달렸다. 무심한 듯 그어 내린 몇 가닥의 선이 뿜어내는 존재감은 컸다. 고작해야 몇 가닥 선(線)의 열정이지만 미니멀한 절제미에 깊이감이 더해지자 세상에 없는 고요가 스몄다. “목탄 드로잉 선 작업을 실험적으로 했는데, 이번에 시리즈 작업으로 본격화 해봤어요.”

15일에 개막하는 GOODSPACE 개인전에 선(線) 드로잉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이지만 윤 작가하면 색면 추상이다. 미디움과 잉크를 혼합하고 천을 씌운 패널 위에 붓고 기울이고 말리는 과정을 중첩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물감을 붓고 흔들고 말리기를 중첩하는 과정에 색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흡수하고, 소화하고 진화하는 효과가 드러났다. 그 결과 드러나는 타원형이나 네모 등의 형태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이 머물렀다. 중첩된 색에 의해 정화된 감정선은 명상과 사색의 세계였다.

이번에 본격 소개하는 선(線) 드로잉도 색면추상처럼 붓을 사용하지 않는다. 칼로 평면을 자르고 목탄을 그어 문지르는 것으로 드로잉을 완성한다. 작업은 종이나 캔버스 천의 일부를 칼로 자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잘려진 선에 목탄을 그어 문지르면 가루가 떨어진다. 목탄은 뒷면에서 앞면으로 문지르고, 이후 앞면에서 문지르면서 떨어진 목탄가루를 휴지로 수렴한다. 마지막에 목탄 가루를 고정시키기 위해 픽샤티브로 갈무리한다.

선 드로잉의 전신은 면분할이었다. 평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삼분할하고, 한 면을 두께가 얇은 트레싱 종이로 덮고 면분할한 사각에 목탄드로잉을 뒷면에서 긋는 작업이 선 드로잉 이전에 시도됐다.  이 경우 면분할이라는 규칙이 생겨났고, 규칙의 도입은 전개양상을 무궁무진하게 했다. 관건은 규칙 만들기인데, 이때 요구되는 덕목이 냉철한 논리전개력이었다. 신작인 선 드로잉 작품의 경우에도 규칙 만들기가 선결요건이 됐다. “선 드로잉이 단순한 선일 수 있지만 규칙이 정해지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지죠. 작업이 다채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의 말대로 선 드로잉은 변주가 무궁무진하다. 몇 개의 선을 그을 것인가부터 선의 길이와 목탄 가루를 뿌릴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가 등의 다양한 변수에 의해 작품의 결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는 작품 사이즈까지 규칙에 포함시켰다. 캔버스의 규격에 따라 선의 길이를 결정하는 식이다. “작품 사이즈와 선의 관계에 규칙을 둠으로써 규칙을 보다 확장해 보았어요”

선 작업은 놀이처럼 혼자 조금씩 해 오던 작업이었다. 그런데 올해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몇 작품이 소장되고, 대구미술관 소장품에도 선정됐다. 미술전문가들로부터의 호평도 이끌었다. “혼자 끄적거려 본 작품인데 반응이 좋아서 제대로 해봐도 되겠다 싶었어요.”

윤 작가의 작품을 장르로 따지면 회화다. 그러나 작가는 붓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의 행위가 붓을 대신한다. 색면 추상은 물감을 캔버스에 붓고 기울이는 행위로, 선 드로잉은 칼로 캔버스 면을 자르고 목탄을 긋는 행위로 완성한다. 이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우연성이다. “필연성 못지 않게 우연성도 작업에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게 되죠.”

물성을 정신성으로 치환하고자 했던 색면추상이 규칙이 엄격한 선 드로잉으로 넘어오면서 개념이 강화됐다. 규칙이 변주 가능성을 높여주자 작업에 자유로움이 분출했다. 한 번 자유를 만끽한 경험 때문일까? 이제는 색면추상에도 규칙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작업이 거침없는 확장세를 보이는 중인 것. “20여년을 흔들림없이 묵묵하게 작업해오면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홍콩문화원이나 홍콩의 화이트 스톤 갤러리 등에서 개최하는 단체전에 초대되고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면서 조금씩 인정받는 것 같아 좀 더 속도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전시는 GOODSPACE(굿스페이스·대구 중구 동덕로8길)에서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053-421-957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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