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새하얀 설원 속 마주한 엄마의 첫사랑
‘윤희에게’ 새하얀 설원 속 마주한 엄마의 첫사랑
  • 배수경
  • 승인 2019.11.14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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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녀 윤희와 엄마가 궁금한 딸
편지 한통으로 시작된 오타루행
자극적이기 보다 섬세하게 그린
감추고 살아왔던 과거와의 화해
스스로 벌주는 마음으로 지내온
윤희의 희망적인 변화에 응원을
윤희에게-3
 



대부분의 첫사랑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그래서 더 아련한지도 모른다. 14일 개봉한 ‘윤희에게’는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첫사랑을 떠올려보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는 편지 한통으로 인해 시작된 모녀의 여행기이자 엄마가 오래도록 묻어왔던 사랑 이야기다. 남편과 이혼 후 고등학생 딸과 둘이 살고 있는 윤희(김희애)는 금방이라도 바스라질듯 생기없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우연히 엄마에게 온 편지를 읽게 된 딸 새봄(김소혜)은 엄마가 궁금해진다. 아빠와 삼촌에게 엄마에 대해 물어도 해답을 찾지 못한 그녀는 결국 엄마에게 바로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뭣 땜에 살아?”

결국 새봄은 무심하게 눈 내리는 곳으로의 겨울여행을 제안하며 엄마의 옛 친구를 찾아주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여기에 그녀의 남자친구 경수(성유빈)가 조력자가 된다.

관객들은 윤희의 첫사랑을 어렴풋하게 짐작한 상태로 모녀의 여행에 함께 동행하게 된다.

엄마의 친구를 찾아주기 위한 딸의 계획은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영화를 보며 가끔씩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은 새봄과 경수의 덕이다. 편지로부터 시작된 여행, 엄마의 오래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딸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윤희에게
 



그들의 목적지는 눈이 쉬지 않고 내리는 오타루. 치워도 치워도 계속해서 내리는 오타루의 눈은 어쩌면 그들이 그동안 겪어왔던 힘든 현실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쥰(나카무라 유코)의 고모는 ‘눈이 언제 그치려나’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인다. 그러나 차츰 눈은 차가움보다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을 전해준다.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모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영화는 드러내지 않고 모든 감정들을 꾹꾹 눌러담음으로써 몇마디의 대사보다 더한 여운을 선사한다.

고독하고 삭막해 보이는 영화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단순한 서사를 빛나게 만드는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몰입으로 이끈다.

윤희와 쥰이 만나는 장면에서도 표정이나 눈빛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뿐, 대놓고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행여라도 있을 불편한 논란에서 비껴선다. 물론 그들의 과거 역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타루의 설원과 편지를 소재로 삼은 점에서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가 떠오른다.

 
윤희에게-2
 



여행이 끝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한층 밝아진 윤희는 드디어 그동안 숨겨두었던 미소를 보여준다. 그녀의 미소를 보며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을 거두고 세상을 살아나갈 그녀를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다.

퀴어소재라는 것 때문에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는 자극적인 스토리로 끌고 가기보다 자신에게 벌주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윤희의 고단한 삶에 위로를 건네며 희망을 얘기한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라는 말을 한다. ‘윤희에게’는 여기에 슬며시 하나를 더 얹어놓는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해준다. 그동안 너무 자극적인 영화에 지친 이라면 ‘윤희에게’와 같은 감성 가득한 영화를 선택해도 좋을 듯 하다.

장편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TPEC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임대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윤희에게’는 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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